날씨가 추워지면 수능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 

입시의 긴장감도 있겠지만, 걸어왔던 1년을 뒤돌아보게 되는 날씨이기에 그런 것 아닐까.

2021년을 보내고 있는 나 역시도, 작년의 냄새와 장면들이 선명하게 떠올라

이번엔 수능 경험담을 3부작 수필로 적어보고자 한다.

19살의 내가 아무한테도 하지 못했던, 하상욱만이 꺼낼 수 있는 이야기.

담담한 어체와 감성돋는 글을 지향하니, 평소와 글이 다르더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2주 전의 이야기를 지금 올리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3부작은 2주, 전날, 당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요일을 지키다보면 수능 전날에 칼럼을 읽게 된다. 이가 좋은 영향을 끼칠 것만 같지는 않아 매주 일요일마다 수필을 업로드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지금 시기는 모든 수험생이 힘든 시기다. 물론 행복하다면 그건 또 그 자체로 너무 좋은 것이지만, 대다수는 늪에 빠지고 있는 느낌일 것이다. 그런 수험생분들께 나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위로와 공감의 손길을 내밀고자 한다. 수능 문학 읽어주듯, 간단하게 읽고 넘기는 칼럼이 되었으면 한다.

자, 이제 2020년 11월으로 돌아가보자.

 

'상욱아, 너 안과 좀 가봐야겠다.'

나의 수능 2주 전은 엄마의 이런 말과 함께 시작했다.

평소에도 눈에 신경을 많이 쓰던 터라 근심이 많았는데, 결국 문제가 생긴 것이다.

거울 앞에 선 나, 그리고 비춰진 눈에 보이는 누런 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누군가 누르는 것처럼 눈이 욱신거리고,

양안시차가 심해져 국어를 푸는 데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난 수능을 20일 가량 앞둔 채,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을 가게 되었다.

내가 아침에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사람 웃는 소리를 듣고, 활자를 보고 있지 않는다는 것에서 낯섦을 마음에 머금기도 했다.

하지만, 낯섦에서 새어나오는 상쾌함은 곧 '수능에 지장이 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으로 칠해졌다.

 

검안을 받고, 흔들리는 엄마의 눈동자를 보며 의사에게 듣는 말

'녹내장이 의심됩니다. 대기예약자가 많아 재검안이나 수술은 적어도 12월 말이 되어야 가능할 거에요.

그러니 12월 말까지는 눈을 많이 쉬어주고, 많이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모든 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정상치 안압을 훨씬 뛰어넘은 수치에 의사는 말이 끝나고서도 걱정을 표했다.

엄마의 눈엔 눈물이 고이고, 전화를 받은 담임선생님께서는 떨린 목소리로 정적을 말하셨다.

그러면서 함께 꽂히는 말,

'전자파에서 최대한 멀어져야하고, 신경쓰는 행동들을 최대한 자제해야 하실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결국 인강 듣지 말고, 온 신경을 쏟아야 하는 실모나 n제도 풀지 말라는 엄포 아니던가.

그 어느 때보다 달려야 할 파이널에,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내가 공부를 못한다...

그냥 길을 걷다 누군가가 '당신, 수능치지 마세요'라고 말해줬으면 했다.

 

증명서를 제출하기 위해 학교를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갔다.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w. 어제 플래너를 보여주며 파이널이 정말 소중한 시기임을 느낀다고 말했었다.

난 웃음과 미소라는 가면을 쓰고, 언제나처럼 w에게 말을 했으나 가면 뒤에 물이 흐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왜 늦었냐는 친구들의 말에, 간단히 집에 일이 좀 있었다고만 둘러대고 - 그때는 괜히 민폐끼치는 것만 같았다 - 교무실로 들어갔다.

몇몇 친구들은 학교에 나오기 싫어 거짓으로 병결을 받기에, 대부분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나 역시 담임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지만, 담임선생님께서는 의심없는 포옹으로 날 맞아주었다.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2019년 11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만큼 달려왔는데,

곧 이 기나긴 동굴의 끝에서 빛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정말 한순간에 모든 빛이 사그라든 것만 같았다. 결국 나도 바람 앞의 촛불이었던 것인가.

모든 교무실을 돌아다니면서, 수능원서 받을 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겠다고 말하는 모든 순간이 슬펐다.

 

탐구를 풀고 있어야 할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서 가만히 사색에 잠겼다.

공부해야만 하는 것을 아는데, 하지 못하는 것이 비참한 나. 무엇을 해야할까...

내가 그려왔던 수험생활의 지도, 꿈꿨던 12월 4일(작년 수능이 끝난 다음 날), 2021년의 하상욱.

닿을 것만 같았는데, 마지막 갈림길에서 모든 방향성과 간절함을 잃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원래 사람이 간절해서 공부를 한다는 말,

그건 거창한 것이 아니다.

대학을 가고 싶어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 

누군가를 이기고 싶어서 공부하는 것 모두가 간절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시작점이긴 하지만. 모든 사소한 동기는 충분한 간절함을 일으킬 수 있다.

11월, 수능을 20일 앞둔 나의 간절함은 이러한 목적성조차 없는 '공부를 하기 위한 공부'였다.

11개월 동안 쌓아온 나의 관성은 대학을 마이너로 설정하고, 공부 자체를 메이저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 자체를 향한 공부는, 결국 모르는 것만을 대하는 공부를 의미한다. (현우진 선생님의 표현이다.)

그리고 나의 깜냥에는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공부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유는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부이기 때문이다. 그게 좋은 공부인거다.

 

침대에 누워서 수능과 우리가 평소 하는 공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봤다.

혹시 문제를 풀다가 육감이나, 소거법, 추측 등의 요인으로 확실하게 답을 선택하지 못했는데, 정답이 된 적 있었나? 

당연히 있었다. 종이에 시원한 동그라미가 쳐지는 게 유일한 쾌락인 수험생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이런 현상에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위와 같은 그림에서, 소거법이나 추측 등에 의한 정답은 색칠된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진짜 앎의 반대, 그것은 진짜 모르는 것이다. 인정해야만 한다.

진짜 앎의 영역을 알게 되는 것은 '극한의 노력과 연습'을 했을 때 발견된다.

우리 중 대부분이 마주하게 되는 극한의 순간이 언제인가? 그렇다. 수능이다.

수능은 색칠된 영역보다, 색칠되지 않은 영역만을 공략한다. 

이유는 간단한데, 수능에서 손가락걸기나 소거법을 쓸 수 있는 깡을 대부분이 가지기 못하기 때문이다.

괜시리 모든 선지를 다 점검하게 되고, 계산 과정 모두를 살펴보는 것이 수험장에선 일반적이다.

이렇듯, 단 하루로 우리가 쌓아온 공부의 역사를 평가받기에 연습 때 차용한 운은 적용되지 않는다.

아마 이러한 요인 덕분에 '수능대박'이 극소수에게만 일어난다고 말해지지 않을까.

또 이렇기에 '수능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연습 때, 색칠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난 그것을 '극한의 공부' 그리고 '모르는 것을 대하만 하는 공부'라고 칭했다.

극한의 모의고사에서 소거법이나 감을 적용하면 그 문제는 틀릴 확률이 높다. 

그런 부분을 본인이 진짜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답을 꼼꼼하게 하면 영역을 넓힐 수 있다.

 

 

우리는 앎의 영역을 먼저 형성해내고, 그 속에서 진짜 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앎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은 몸이 하는 공부 (손만 움직이는 공부)를 의미하고,

진짜 앎을 깨닫는 것이 마음이 하는 공부를 의미한다고 본다. 

즉, 파이널 기간에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마음을 다하는 공부인 것이다. 공부 자체가 목적인 공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비참했지만, 멈출 순 없었다. 힘들지만, 주저앉아 울 수만은 없었다.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았지만, 그게 공부에 영향을 끼쳐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난, 내가, 그리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해가 졌다고 해서, 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어둠을 걷고 있는 상태임을 인정하자, 그런데 눈을 감고 있으면 계속 어둠일 뿐이니

난 어서 이 악몽에서 깨어나 수능날에는 웃기로 다짐한 것이다.

이때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한 것이 '극한의 모의고사'와 '오답노트'였다.

(극한의 모의고사는 이전 칼럼에서 최대한 자세하게 언급했으니 참고하길 바랍니다.

나아가 오답노트를 작성한 방법도 칼럼으로 적을 겁니다!)

 

수능이 다가오는 모든 나날을 난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순공이나 하는 양은 줄었지만, 질적으로나 마음으로 하는 공부는 증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모트모트 플래너는 칸을 더 이상 넘어가지 않았지만, 가끔은 X표시도 적어야했지만,

난 내가 사는 그 모든 시간에 후회가 없었다. 되려 후련했다.

파이널 기간에 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거니까. 죄여오는 압박감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니까.

그 하나의 행위만으로 나를 내가 보다듬어줬다.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기어가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래야 지금 나의 부정적 상황을 타개할 수 있기에, 나아가 난 나만이 바꿀 수 있기에.

 

수능 전날이 오기까지 더욱 많은 노력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는 할 수는 없는 노력임에 틀림없다.

눈으로 인강을 볼 수 없었기에, 귀에 이어폰을 꼽고 듣기만 했다.

엄선경 선생님의 EBS 문학강의를 듣고 이미지를 그리며 작품을 환기했다.

조정식 선생님의 EBS 총정리 강의를 들으며 지문의 주요 내용과 어휘를 외웠다.

EBS에 매달리지 말라고 커뮤니티에서 말하지만, 뭐 어떤가. 

수능장에서 후회가 없고, 자신이 있으려면 타인에 예속되는 공부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독단 안에 숨은 독기 있는 공부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킬캠 해설강의와 윤성훈 선생님 실모 해설강의를 들으며 눈으로 그래프와 도표를 그렸다.

처음부터 잘된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과정만 거치다보니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무흔적도표와 원트모의고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집 앞 산책길을 답보하며 수능날에 웃을 일만 생각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었다.

 

거창한 이유를 붙여가며 내 노력과 열정을 포장하기는 싫었고, 그런 가식없이도 난 자신있었다.

왜?

난 나고, 내가 할 수 있는 공부를 최선을 다해 하고 있으니까.

그게 파이널 기간에 제일 소중한 마음가짐인 것 같다.

내가 수능장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즌에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고한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을 타인에게서 구하지 말자.

남을 깎아내린다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남이 인정해준다고 해서 확신을 얻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본인의 공부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것만으로 수험생활은 성공인 것!

오직 그런 공부만이 수능장에서 본인의 안전망이 되어 따뜻하게 안아줄 것이니,

기출을 이제 보면 어떠한가, 본인에게 필요하다 생각들면 당장 풀자.

EBS를 안했으면 어떠한가. 기출이나 사설을 더 했단 의미로 받아들이자.

N제나 실모를 못 풀면 어떠한가. 그게 본인에게 맞는 공부인 것이다.

힘들지만 한 걸음 더 내딛고,

슬프지만 한 번만 더 힘내보자.

핑계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올 본인의 모습을 거울에 그려보는 것이다.

항상,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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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목달장 h입니다.

날이 많이 춥네요. 입시한파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나 봅니다.

그런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칠 때마다, 자꾸 전 2020년을 회상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지금 수많은 수험생들이 얼마나 힘들지 조금이나마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감정에 섣불리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정말 어리석은 말이지만, 

전 칼럼을 적을 때마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면서도 다가갈 수 없는게 아쉬운 것 같아요.

해당 글은, 제가 수능 3주 전부터 하루 전까지 했던 노력을 집약적으로 담아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픔과 슬픔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칼럼 계획표를 올리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칼럼니스트(?)인 저에게 힘은 좋아요와, 여러분들의 행복이니

언제나 웃고, 긍정적으로 이겨내보자고요. 

 

 

(댓글에 답글을 다는 속도가 많이 느립니다...ㅜㅡㅜ 정말 죄송해요.

칼럼에 집중하고, 저도 시험기간인지라 정말 여력이 안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