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번 칼럼에서 못다한 얘기들을 해볼까 합니다.

이건 유일하게 남아있는 플래너의 흔적이에요. 2020년 하상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pre-칼럼에서 여러분들께 무슨 생각이 드냐고 물어봤었죠.

댓글에 나왔던 주요한 반응은 3가지였습니다.

'존경심이 들어요'

'회의감이 들어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요'

우선 제가 해드리고 싶은 얘기는 단 하나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구누구의 공부를 따라가고,

타인의 공부에 휘둘리고, 고통받으며, 영향받을 필요없다는 거에요.

왜?

이미 여러분들은 충분한 노력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만화에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몸으로 하는 것은 노력이 아니야, 마음으로 하는 것만이 노력이지'

여러분들 모두가 울고 싶고, 지쳐 쓰러지고 싶고, 주저앉고 싶을 겁니다.

수능의 압박감은 더해오고, 당장에 공부는 잘 안되는 것 같고, 불안감은 엄습해오겠죠.

전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노력하지 않았다면, 아프지도 않았을 것이니까요.

뭐,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부정적인 감정이 휨싸일 때 주저앉는 것이 패배의 순간이라고 하겠지만

호랑이 굴 앞에서 누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우선 감정이 먼저겠지요.

전 그 감정을 위로로 바꾼 것 뿐이었습니다.

눈이 아프고 난 뒤, 실모에서는 화작과 문학에서 오답이 나오기 시작했죠.

그때 좌절하지 않고 화작과 문학을 반드시 다 맞추겠다는 집착을 버렸어요.

수능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실모 점수나 오답에 예민해지기 마련이지만

되려 집착하게 되면 잃게 된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를 대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화작과 문학에서는 실수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수 있었어요.

킬링캠프를 풀다가 3점을 2개 틀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94로 끝나진 않았...)

심지어 검토를 해서 답을 바꿨기에 오답이 발생했었는데

화가 나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어요. 되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틀렸기에, 수능에서는 틀리지 않을 거니까.

이 오답을 할 때, 저는 한 줄로 이렇게 적어놓음으로써 가벼이 넘겨버린 기억이 있네요.

'수능날에는 그냥 달려라. 어디서 쪼잔하게 과거에 갇혀 살고만 있는 거냐?'

그런 생각을 지닌 채, 저는 D-1을 맞이했어요.

원래는 이 날 일찍 자고, 최상의 컨디션을 수능에 들고 가려 했었습니다.

그런데 전날 저녁에 엄마랑 오순도순 얘기를 하다가 뇌리에 박히는 구절이 있었어요.

'상욱아, 남들은 쉬면 컨디션이 회복되지만, 너는 쉬면 컨디션이 죽는 것 같지 않니?'

정확히 제 6평과 9평의 차이점이었어요. 다시 되돌아보니 6평 전날에는 쉬었던 탓에 칼이 무뎌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날에는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DAY-OFF라고 적혀있던 플래너를 찢고, 기존에 했던대로 공부를 계획하게 되었어요.

대부분의 공부를 전날에 끝내 놓아 할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꺼진 불도 다시 봐야한다더니.

불안했던 부분들이 여전히 제 머릿속에서 일말의 의심으로 남아있는 걸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은 수능 행동강령 A4 용지에다가 모두 옮겨적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주는 게 메인이었습니다.

조금 자세하게 시간 바이 시간으로 전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전 이맘때 즈음에 눈 회복을 위해서 5시 30분 즈음 일어난 후, 집 앞의 강변 산책로를 걷다가 들어왔어요. 

이때 수능날 아침에 들을 활기찬 노래 (맴돌이 없는 것을 골라야해요!)를 선정했습니다. 

전 공부할 때는 절대 음악을 듣지 않았지만, 등굣길이나 하굣길에는 자주 들었었어요 ㅎ

산책을 마치고, 샤워한 후 간단한 아침까지 먹으니 6시 30분이었습니다. 

학교에 10시 30분까지 가서 수험표를 수령해야하기에, 전 4시간 동안 평소 루틴을 가져갔습니다.

이때 든 생각은 단 하나였어요.

'수능날은 특별한 날이 되면 안된다. 내 생애 제일 보편적인 날이 될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화작 15문제 두 세트를 풀어주고, 행동강령에 몇몇을 옮겨적음으로써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평소 국-수-영-탐 순서를 지켜가며 한 번을 CYCLE 이라고 하면 총 4 CYCLE을 돌리는 공부법을 고수했었기에, 이후 수분감 STEP 2 수1, 수2를 모두 풀어보기 시작했어요. 

기억에 의존해도 상관없으니, 기출에서 얻었던 모든 개념과 스킬들을 되뇌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텍스트와 수학적 개념 간의 유기적 연결 관계를 확고히 했고, 이를 또 압축해서 옮겨적었습니다.

수능특강, 수능완성에서 소재가 독특하거나, 조정식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신 지문들 20개를 선별한 후, 그 중에 10개를 빠르게 훑고 

생윤 모의고사 5개, 사문 모의고사 2개를 풀었더니 이제 학교를 갈 시간이 되더군요.

학교를 가는 동안에도 쉬면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사문에서 발생한 오답을 윤성훈 선생님 강의를 수강하며 메꾸어 나갔습니다. 

(그냥 수능 전날 모든 게 제 마음대로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마지막 불꽃을 불태운 것 같아요 =D)

이때, 개방형 문제(~가 ~라면, ~는 ~다)에서 머리가 꼬여버리는 실수가 나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행동강령에다 이 포인트 역시 기재했어요. 

학교에 가서 3주만에 선생님들을 뵈었더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 1, 2, 3학년 때 담임선생님 모두를 정말 잘 만나 행운이라고 생각하는데,

2학년 때 선생님께서 나가기 전에 따뜻하게 안아주시면서 

눈은 좀 괜찮냐고, 그런데 기는 더 다듬어진 것 같은데라고 하시면서 

수능 썰어버리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이때 저의 대답.

'그...맛은 미디움 레어죠?' 

딴 의도는 없었고, 마음에 있는 긴장감을 떨치면서 선생님께 자신감을 어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__^

집에 돌아와서 수능 도시락을 먹고 (아, 참고로 저 50일 동안 같은 메뉴로 점심 먹었어요.)

학교 선생님들과 정리한 문법과 문학 노트를 복기한 후,

킬링캠프와 빡모 모두를 다시 보면서 기억해야 할 스킬들이나 사고방식들까지 행동강령에 옮겼습니다.

여기에 뉴런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과, 킬캠에서 오답이 발생한 띰들을 다시 정독하면서, 수학적 사고력을 극도로 정형화시킨 것 같아요.

이후 영어 선별지문 중 남은 10지문을 빠르게 훑어주고,

지금까지 했던 사탐 컨텐츠 중 가장 얻을 것이 많았던 실모와 N제, EBS, 기출을 모두 책상에 펼쳐놓고

백지연습을 할 최종 정리와 행동강령을 갈무리짓는 작업을 하며 점심공부를 마쳤어요.

30분 동안 열심히 놀다가 

(이때 VVS를 처음 들었어요... 맴돌이를 걱정하기보다 그냥 제가 하고 싶은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비밀의 화원이라는 노래까지 들으며 산뜻한 오후를 보냈어요!

본인의 의지가 충만하다고 생각되면, 따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가 진짜 훅하고 날라가요!)

다시 자리에 앉아 이번에는 역순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유..? 없었습니다. 

그냥 모든 일상이 제 컨트롤 하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바로 행동으로 옮긴 것이죠.

수험장에 들고 들어갈 현자의 돌 시즌 2 시험지와 전년 사문 기출에 올해 평가원이 던져준 교훈들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당해 평가원 모의고사를 극한으로 풀어주고,

수학 사설 모의고사 한 개를 극모로 푼 후, 당해 평가원을 다시 보며 모든 수학공부를 매듭지었더니

10시가 되었더군요.

참 애매한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12시간 뒤에는 국어시험을 끝냈을 거라는 생각이 신기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이때 그냥 잘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컨디션 관리도 하나의 역량이니까.

그런데...

너무 아쉬웠어요.

수험생활 내내 10시에 자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보니, 패턴이 어색해진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나아가, 하필 책꽂이에 단 하나의 실모가 남아있는 거에요. (다 푼 줄 알았는데, 포장이 안 뜯긴...ㅎ)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실모를 풀고자 했습니다.

이 판단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모를 잘 치면 내일의 나에게 힘이 되어줄 것 같다는 판단과

실모를 못 치면 마지막 행동강령을 다질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에

전 그냥 아무 의심없이 실모를 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아마 이 판단이 제 수능 성공의 비법인 것 같습니다.

아무 막힘도 없이, 깔끔하게 65분 써서 100점을 맞았고

손가락걸기를 했던 부분들을 보면서 '아, 내 손가락걸기의 기준은 이거구나'하는 확신을 얻었던 것이죠.

이후 기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으나,

설렘 1스푼, 긴장감 3스푼, 불안함 6스푼에 제 잠이 가시더라고요.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한동안했지만, 이를 즐기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장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차라리 즐겨서 스트레스라도 받지 말자는 판단이었어요.

그래서 mp3를 들고 와, 아까 들었던 VVS 무대버전을 무한반복했습니다.

맴돌이? 뭐 어때요. 전 맴돌이에 당하지 않을만큼 열심히 공부했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두 남녀의 성장 스토리를 계속 듣다보니, 언젠가부터

'아, 나 내일 수능 잘 치겠다'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엔 알고리즘이 '아이유-비밀의 화원'을 추천해줘서 딱 그 노래를 듣고 3시 30분에 잤습니다.

1시간만 자서 컨디션이 무너질 것이라는 고민조차 하지도 않았습니다.

수능은 대부분 객관적인 노력의 양과 질이 좌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주관적인 만족도와 행복이 부담감을 덜어주어 좌지우지할 때도 있거든요.

나 스스로가 원해서 한 행동인데, 이게 어떻게 수능에 영향을 끼칠까라는 생각 덕분에

전 1시간 20분 가량만 잤지만, 평소처럼 힘차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불안해도, 아파해도 좋아요. 그게 본인이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방증이니까요.

대신 스스로 걷고 있는 길에 본인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 누구도 확신을 줄 수 없고, 실모나 6, 9평 따위로 확신을 얻을 수도 없어요.

중요한 건 본인이 본인의 삶에 프라이드가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인 여러분들이 적어낼 하나의 위인전.

남은 기간들은 허수의 마인드를 갖되, 실수의 묵묵함과 무게로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능을 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노래의 가사를 인용하며 마무리 짓고, 곧 다시 오겠습니다.

화이팅!!

[IU - 비밀의 화원]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들은 걱정 없이

아름다운 태양 속으로

음표가 되어 나네

향기 나는 연필로 쓴 일기처럼

숨겨두었던 마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있어

비가 와도 젖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