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은송입니다.

어느덧 수능까지 10일 남짓 남았네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니 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더 그렇겠죠.

오늘은 편지 쓰듯 제가 수능을 쳤을 때의 이야기, 팁 아닌 팁, 하고 싶은 말 정도를 주저리주저리 써보고자 합니다. 저도 이맘때쯤 수능 후기랑 팁 같은 거 찾아보고는 했었거든요.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수능 대비라는 핑계로 쉰 것 같기도 하지만요. 여러분에게도 제 글이 잠깐의 휴식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상당히 길어져서요. 바쁠 때 읽기보단 밥 먹으면서 잠깐 쓱 훑어보는. 밥 친구로 삼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능 날의 기억

수능 전날까지도 수능이 내일이란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줌터디 켜두고, 실모 치고, 도시락 먹었거든요. 도시락 메뉴도 특별할 것 없었습니다. 원래는 수능 날 메뉴 그대로 싸가서 연습하려고 했는데, 막상 전날이 되어서는 까먹기도 했고 음식이 준비되지도 않아서 진짜 아무거나 먹었어요.

그런데 저녁 7시 정도 되니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더라구요. 딱히 의식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심장이 빨리 뛰고, 집중도 안 되고, 책을 들여다봐도 글이 눈에 안 들어왔어요. 그래서 청심환을 그때 먹었습니다. 원래는 긴장 때문에 잠이 안 오면 먹으려고 준비했던 거라, 잠들기 직전 혹은 수능 당일도 아니고 공부하다가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먹고 시간이 좀 지나니 다시 괜찮아지더라구요. 생각해보면 그때가 수능 당일보다도 긴장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녁에 오답 노트 들여다보고 EBS 좀 보다가 10시 정도 되어서 좀 이르게 집에 갔습니다. 떨려서 잠 못 자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청심환을 먹어서 그런지 누운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수능장이 집에서 차 타고 2~30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어서, 좀 부지런히 움직여서 아침 먹고 수능장에 6시 40분쯤 도착했습니다. 유난히 어둑어둑했던 하늘이 생각나네요.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데, 창밖이 어두워서 그냥 저녁에 교실에서 혼자 공부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먼저 앉아서 국어 예열 지문을 풀었습니다. 두 세트를 가져갔는데, 하나는 사설, 하나는 기출이었어요. 빡세게 공부를 하려는 목적은 아니었고, 그냥 미리 준비 운동하자는 느낌으로 풀었어요. 답지도 안 가져갔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렇게 국어 예열 지문을 풀고, 미리 화장실도 체험할 겸 복도를 걸어가는데 어느새 날이 많이 밝았더라구요. 돌아오는 길에는 학교 선배를 만나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는 오답 노트와 행동 강령 정리해놓은 것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딱히 뭘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교실로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이고 감독관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라구요. 그렇게 준비령이 울리고, 보던 것을 집어넣었죠.

그제서야 조금 수능이라는 실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차 타고,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던 그 순간까지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거든요. 차라리 6모 칠 때가 더 떨렸습니다. OMR 받고 마킹할 때 되어서야 긴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긴장보다는 기분 좋은 설렘에 가까웠어요. ‘드디어 시작이다. 어떤 연계 지문 나오려나. 어떻게 문제 냈는지 보기나 해보자.’ 이런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나네요.

그리고 시험지를 받아 파본 검사를 하면서 연계 지문을 쭉 보는데, 씨익 웃음이 지어지더라구요. 제가 예상했던 연계 지문이 하나도 안 나와서…. 특히 거산호 지문이 기억에 남는데, 수능 전날 EBS를 보면서 ‘오 이건 안 나올 듯?’하고 적당히 보고 넘겼던 바로 그 작품이었거든요. 그쯤 되니 오히려 그런 생각을 했던 저 스스로가 웃겨서 ‘하핫 사설 풀 듯 풀자’라는 생각으로 시험지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본령이 울리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죠. 조금 당황했습니다. 평소 풀던 기출보다는 공부할 때 풀었던 리트 느낌과 차라리 더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순식간에 국어 시간이 끝나고, 좀 어려웠지? 아닌가? 하는 아리까리한 마음으로 주위를 쓱 둘러봤는데 주변이 너무 평온하더라구요. 18 국어 불수능 때 엎어져 우는 사람도 있고 퇴장한 사람도 있었다는 글을 많이 봤었는데, 다들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다음 시험을 준비해서 ‘흠ㅎ 조금 큰일 났을지도? 하핫’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해온 공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망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고, 내가 너무 오바해서 생각했겠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순식간에 수학 시험도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꺼냈습니다. 전 제가 좋아하는 음식점의 빨간 소고기 뭇국과 김, 밥, 계란말이, 청포도를 들고 갔었어요. 매운 거 말고 소화 잘되는 거 들고 가란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거 들고 가는 게 제일 잘 먹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좋아하는 걸로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음에도 밥은 또 잘 안 들어가더라구요. 들어가긴 하는데 전혀 허기도 안 느껴지고 냄새에 거부감이 느껴졌어요. 좋아하는 음식인데도 그래서 신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청포도를 정말 잘 들고 간 것 같습니다. 제가 청포도를 엄청 좋아해서 수능 날에도 청포도를 도시락에 진짜 가득 담아갔었는데, 밥은 안 들어가는데 기가 막히게 청포도는 또 잘 들어가더라구요. 그래서 밥에는 거의 손도 안 대고 가져온 청포도만 다 동냈습니다. 그렇게 먹고도 탐구 칠 때 배가 고팠는데 이것마저 없었다면 오후에 기력이 없어서 시험을 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밥을 더 빨리 먹어서 그 시간에 공부하려고 했는데, 음식 냄새에 거부감이 들어서 복도로 나와 공부했습니다. 한국사 요약본을 보며 걸어 다녔던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순식간에 지나가서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거라면, 너무 배가 고파서 탐구 시간에 초콜릿을 미리 까놓고 과목 교체 시간 동안 먹었더니 그사이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졌다는 점? 원래는 그 시간에 한 번도 뭘 먹은 적이 없었거든요. 어쨌거나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수능이 끝나 있었습니다.

끝나고 나와서 정문으로 걸어가는데, 허무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더라구요. 너무 실감이 안 나서요. 그냥 모의고사 하나 치고 나온 것 같고. 오늘은 틀린 문제를 복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좀 어색했던 것 같아요, 집 가려고 부모님 차를 탄 순간에야 수능이 끝났다는 게 확 실감 나더라구요. 타자마자 들었던 말이 ‘국어 평이했다던데 어땠어?’라, 듣자마자 멘탈이 파삭했습니다. 그렇게 차 타자마자 가채점표 들고 메가스터디에 다 입력해놓고 불안하게 기다리며 집에 갔습니다. 수능 볼 때보다 오히려 집 갈 때 더 긴장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네요.

팁 아닌 팁?

이렇게 수능을 겪으면서 팁 아닌 팁들을 조금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아서요.

1. 종이 넘기는 소리 신경 쓰지 말자.

-괜히 시험 칠 때 나보다 빨리 페이지 넘기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신경이 집중되면서 조급해지는 경우가 있다. 수능은 속도로만 결정되는 시험이 아니다. 나보다 먼저 푼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보다 잘할 거란 보장은 없다. 막말로 일부러 다른 수험생들 멘탈 깨려고 제대로 다 풀지도 않았으면서 펄럭거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순서 다르게 푸는 사람도 있으니까. 막상 현장 가면 괜히 의식하게 되니 계속 되새기자. 신경 쓰지 말자.

2. 수능 도시락은 여러 종류로 구성하자.

-긴장했을 때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뭔지 잘 모른다. 나만 해도 굉장히 둔감한 편인데,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음식 냄새가 수능 날 갑자기 역하게 느껴져서 제대로 못 먹었다. 그러니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으로 싸가되 밥을 못 먹을 상황에 먹을 것들을 챙겨가자. 나는 밥 못 먹을 상황에 대비해 에너지바와 청포도를 같이 가져갔는데, 당일이 되니 에너지바조차도 먹기 싫어서 과일만 다 먹었다. 기왕이면 냄새 안 나는 종류의 음식도 챙기자.

3. 평소와 달라도,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당황하지 말자.

-평소랑 같은 게 신기한 거고 정말 잘 된 케이스인 거다. 시험장도, 분위기도, 주변 환경도 다 바뀌는데 어떻게 항상 같겠는가. 달라지는 게 일반적인 거다. 물론 실력을 모두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익숙한 상황에 있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달라진다고 해서 실력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상정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 당황해서 괜히 멘탈 부숴 먹지 말고, ‘오~ 오늘은 이렇게 해보네~’ 모의고사 치며 연습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의연하게 넘겨라. 나는 당일날 수능 샤프가 갑자기 안 나와서 엄청 당황하기도 했고, 그래서 손 덜덜 떨면서 고쳐보려고 하다가 결국 감독관 선생님께 한 자루 받았는데, 나중에 쉬는 시간에 다시 만져보니 잘 작동하더라. 괜히 긴장해서 평소와는 달리 행동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 마라. 물론, 그렇다고 일부러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지는 말자!!!

4. 안 풀리는 것에 당황하지 마라.

-안 풀리는 문제가 있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난 마스터가 아니다. 물론 다 맞을 각오로 공부한 건 맞다. 하지만 내 각오는 각오인 거고, 현실은 다르니까. 문제 출제진조차 정작 풀면 틀릴지도 모른다.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자는 것,) 못 푼 문제 있다고 시험 망한 거 아니다. 어차피 상대평가고, 다른 사람들도 못 풀었을 거라고 생각하자.

5. 귀마개는 혹시 모르니 일단 챙기자.

-검사 받으면 시험 중에도 쓸 수 있는데, 나는 귀가 답답한 게 싫어서 일단 가져가기는 하나 과연 이걸 내가 쓸지 회의감을 느끼면서 귀마개를 챙겼다. 하지만 당일날 꽤나 유용하게 사용했는데, 시험 칠 때가 아니라 쉬는 시간에 도움이 되었다. 고사실이 시끄러운 편은 아니었으나 예민한 상황에서 공부를 하려고 하다 보니 자잘한 소음에 자꾸 신경이 쓰여서 귀마개 꼽고 공부했다.

6. 잠 못 잤다고 걱정하지 말자.

-나는 잘 잔 편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혹시 이것 때문에 불안해할까 봐 말해주고 싶다. 못 잔 사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뿐만이 아니다. 모두들 떨려 했을 것이고, 잠도 설쳤을 거다. 걱정 마라. 잠 조금 못 잤다고 실력이 드라마틱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잘 잤다고 드라마틱하게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모두 상당히 심경이 복잡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능이 처음이든, 몇 번 겪어봤든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겠죠. 내 1년의 성과가 이 시험 한 번으로 평가되는 것이니까요.

무엇보다 주변의 시선 또한 많이 부담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기대, 선생님의 기대, 친구들의 기대. 수능 못 치면 부모님과 선생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친구들은 또 어떻게 봐야 할지. 제가 많이 했던 생각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주변에 신경 쓸 정신이 남아있나요. 우린 우리의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잖아요. 남들을 우리가 왜 신경 쓰나요. 신경 쓸 필요도, 그럴 여력도 없습니다. 그들도 그런 걱정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이죠.

우린 그냥 긴 시간 동안 최선을 다 해왔고, 드디어 그 노력을 마음껏 털어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뿐입니다. 결과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지 마세요. 적당한 부담감은 원동력이 되지만, 이 시점에서 느낄 부담감은 원동력이 아니라 오히려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될 테니까요. 물론 결과도 중요하겠죠. 하지만 부담을 느낀다고 결과가 잘 나오는 시험이 아니잖아요.

그냥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이때까지 해 온 것과 같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합시다. 나중에 ‘아, 그땐 그렇게 공부했었지.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난 최선을 다했었고 후회는 없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려온 당신의 인내와, 열정과, 끈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최선을 다한 당신의 시간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고 ‘나’라는 사람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줄 겁니다. 여러분이 달려온 과정에 회의를 품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주저리주저리 말을 뱉어봤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머릿속에 열심히 넣어놨는데 다 쏟아내지 못하면 아쉽잖아요.

공부한 게 안 아깝게 털어내고 옵시다.

여러분의 후회 없는 마무리를 응원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수능 끝나고 봐요!

감사합니다.

유은송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