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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와 D 사이의 C

이름 : 이규현  스크랩
등록일 :
2024-12-15 10: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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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16,741

안녕하십니까여러분제 20기 목표달성 장학생서울대학교 의예과 이규현입니다. 


시간은 말 그대로 유수와 같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이는 요즘입니다작년 이맘때쯤 합격발표를 기다리며 피부로 맞았던 겨울 거리의 감촉이 아직도 시리도록 생생한데벌써 저에게도 후배가 생겼다는 사실이 조금은 믿기지 않습니다사회와 단절된 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애써 시간의 흐름을 자각하지 않으려 했지만메일과 카톡으로 이따금씩 전해오는 합격발표의 승보에 고개를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되려 이토록 시간이 순탄하게 흐른다는 사실이이곳에서의 나날들을 맥없이 압축하여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내적 성장과 유리되어 손쓸 틈 없이 시간이 흘러나가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공부하느라 힘들 학생들에게 푸념 섞인 잔말을 내놓는 것은 여기까지만 해두고, 이번에도 여러분께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미약하나마 써보겠습니다. 

 

조금 주제넘은 추측일지 모르나 여러분은 앞으로 1년간의 수험생활을 거치며 의미와 무의미를 끊임없이 저울질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시야를 넓혀본다면 인생 전반에서도 의미와 무의미의 저울질은 계속되겠으나 칼럼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수험생활로 범위를 제한하겠습니다. 수험생활에서 의미와 무의미를 저울질한다는 것은, 가령 '지금 하는 노력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저 대학과 학과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와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의미와 무의미를 저울질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는 자의와 크게 상관없이 세상에 느닷없이 던져졌기 때문입니다. 확고한 목적의식이나 의미가 없이 세상에 나온 우리는, 애초부터 결여되어 있는 목적의식과 의미를 찾기 위해서 스스로를 인생의 격정 속으로 던져넣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작지만 큰 부분인 수험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목적의식과 의미를 찾는 투쟁, 혹은 발버둥은 지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선택권 없이 세상에 던져졌으나, 그렇게 펼쳐진 세상은 수많은 선택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재밌는 아이러니입니다. 느닷없이 들어와서 갑작스레 쫓겨나는 삶과 죽음, 즉 존재의 양극단을 제외한 부분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문득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한 철학자의 재치있는 말이 날카롭게 머릿속을 스칩니다. 

 

여러분도 수험생활의 시작인 지금 시점부터, 마무리인 합격발표까지 많은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한 날에도 공부에 매진할 것인지와 같은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자신감과 소신으로 원하는 대학에 두려움 없이 원서를 넣을 것인지와 같은 제법 중요한 선택까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자유이고, 그러한 선택으로 발생한 결과를 온전히 감당하는 것도 여러분의 몫입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저를 비롯한 멘토들이 어떤 선택이 바람직한지에 대하여 강하게, 어쩌면 맹목적일 정도로 이야기해주는 것을 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도 저번 수능을 치렀던 여러분의 선배들에게는 다소 강하게, 때로는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어쩌면 제가 했던 선택, 서울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던 과정을 정당화하려는 주관이 개입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수험생활로부터 더욱 시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누군가에게 부드러운 조언을 빙자하여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답을 제시해주지 않은 채, 질문거리만 던지고 가는 칼럼과 그 필자를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차안대를 낀 채 경주마처럼 달려나가야 할 수험생에게, 차안대 밖에 펼쳐진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경주가 시작된 3월 이후에야 비로소 차안대 밖을 떠올리며 방황하도록 놔두는 것보다는, 출발을 준비하면서 '차안대 밖에도 세상이 펼쳐져 있음을 알지만, 나는 최고의 결과를 위해 경주 동안만 차안대를 착용하기로 스스로 결정한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욱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칼럼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청소 및 작업으로 여러 번 흐름이 끊기며 휴대 전화로 작성한 것이라 오탈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메가스터디 장학생, 이규현 드림

  • 실존주의
  • 사르트르
멘토

서울대

이규현 멘토

  • ○ 서울대학교 의예과 24학번
  • ○ 수시 전형
  • ○ 제 20기 목표달성 장학생
  • #학종 #내신관리 #일반고 #현역 #I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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