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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늦었습니다

이름 : 이성윤  스크랩
등록일 :
2026-05-03 11:30:03
|
조회 :
22,224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이제 반팔을 입으면 따뜻하고 시원한, 아주 완벽한 공기가 팔을 감싸고 돕니다. 여러분도 이 완벽한 공기를 느끼고 계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수능 200일이 남은 날이네요. 200이라는 숫자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0이 두 개나 붙어서 예쁘다는 점만 빼면 우리에게 공포감을 조성할 이유도 없고, 우리가 조급함을 느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요?
독서실에 가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체력이 바닥나서 뼈가 없고 피부로만 몸을 지탱하는 기분이 들어요. 터덜터덜하게 걸어가 책상에 앉습니다. 공부 하기가 싫어요. 6모 때 이 과목에서 몇 점을 받으려면 언제까지 뭘 끝내야 하고 뭘 완벽하게 해야 하고.... 할 것이 산더미입니다. 하나씩 해결해보자는 마음으로 수학을 폈는데 문제가 안 풀립니다. 수학부터가 막히는데 다른 것들은 언제하지? 불안과 걱정이 나를 덮칩니다. 수험생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온갖 성공 사례들을 찾아보면서 머리를 식힙니다. 공부를 다시 하려고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고 차라리 인강이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인강을 틀었습니다. 그마저도 얼마 못 가 중단하고 목달장 칼럼이나 큐브 글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이러는 나 자신이 너무 싫지만, 이러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해서 눈물이 납니다. 너무 힘들어요. 그냥 모든 것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최악입니다. 
본격적으로 공부에 뛰어드는 건 좀 더 미루고, 나 자신을 되돌아 보는 건 무섭고 싫고, 뼈아픈 깨달음은 얻고 싶지 않고, 그러니 동기부여 영상이나 글들을 찾아보고, 모르는 척 목달장 칼럼에 '늦지 않았나요?'하는 댓글을 달고 말입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던 과거가 있거든요. 흐지부지 하루를 보내면서 난 간절함이 부족하구나... 자책하고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 잠만 잤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험생활이 끝날 때까지 이런 삶을 지속하신다면 필연적으로 망합니다. 혹시 저런 삶을 살고 계신 독자분이 계시다면, 이 글을 읽은 시점부터는 달라져봅시다. 지금부터 우리 자기 최면을 겁시다. 
'될까?'라는 생각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우세요. '나'는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끝끝내 열망하는 것들을 손에 거머쥘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 후 장밋빛 인생의 무대에 오르는 나의 모습을 그리며, 내 안의 가능성에 뜨겁게 불을 붙이며 공부해보는 거예요. '하기 싫다' 대신 '재밌다'고 최면을 걸며 수학 문제 한 문제가 안 풀리면 기뻐해봅시다. 

사실 과정 속에서 결과는 알 수 없고 우리가 건들 수 있는 영역도 아닙니다. 그저 담담하게 매일매일을 채워나가는 것이 최선이에요. 최선을 다하는 순간 순간이 모여 우리의 삶이 완결되어 가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채워나가고, 하루가 끝날 때는 뿌듯한 피곤함이 자리 잡은 날들이 모여 나가면 분명 이 여정의 끝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을 거예요.

그렇군요 멘토님... 전부 다 알겠어요. 근데 수능이 200일밖에 안 남았는데, 너무 늦은 것 아닌가요?
네 늦었습니다. 이렇게 질문하는 것 자체가 본인이 늦은 것 같다는 불안감에 '넌 늦지 않았어!' 라는 달콤한 위로를 듣고 싶다는 방증 아닐까요...?
그런데요, 이건 제 진심인데요, 절대로 늦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가장 잘 알잖아요. 정말 미친듯이 해본다면, 늦은 것은 없다는 걸요. 그런데 얼마나 미친듯이 해야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고, 그렇게 할 자신도 없으니까 그저 내 마음을 잠시라도 달래줄 위로와 덕담이 듣고 싶어서 저렇게 물어보는 건 아닌지 한번 되돌아 봅시다. 절대로, 늦지 않았어요. 지금부터 '공부하기 싫다'라는 마음을 없애버리고 세상에서 공부가 가장 재밌는 사람처럼 내 안의 모든 것을 불태워봅시다. 기필코, 성공한 수험생이 되고 말 거예요. 

5월 칼럼에는 어떤 내용을 쓸까 고민하다가 오늘은 조금 무거운 이야기로 돌아와 봤습니다. 중간고사 끝났다고 나태해지지 말고, N수생분들께서는 대학에 간 친구들이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절망하지 말고, 난 언제 행복하려나~ 이런 생각 하지 말고!! 모두 6모를 위해 달려봅시다!

아래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쓴 단편소설입니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그냥 끄적인 글인데요, 최근에 반수를 시작한 친구가 제가 2년 전에 준 이 글을 다시 읽고 힘을 얻었다는 카톡을 보내줘서 여러분들 중 누군가도 그 친구처럼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첨부합니다.ㅎㅎ 

#원하는 칼럼 주제 추천은 댓글로 받습니다
#아보카도 마음세탁소는 언제나 정상영업합니다! 마음 속 얼룩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림질 해줄게요
#추천 꾹 눌러주시면 기분이 좋아요:)

행복을 거머쥐었다가 말았다가 -이성윤 지음
구보가 자신의 옹졸한 생각을 끄적인 글 하나를 두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선생님은 그토록 흥분하며 설명하고, 학생들은 구보의 옹졸한 생각들을 한줄한줄 정성껏 읽고 있다. 성윤이는 구보를 업신여겨 볼까 하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 시험점수를 위해서 구보를 겸손하게 정독하였다. 성윤이는 눈 앞에 보이는 선생님의 격양된 설명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든 나도 구보씨와 같은 그러한 이야기를 써보리라 생각한다.
“왜 가방을 싸!! 아직 안 끝났어. 하여간 끝나는 시간은 기가 막히게 아네. 이번 범위에 소설이 많으니까 정독할 때는 끊어서 꼼꼼히 읽어라.”
의자 끄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그녀도 질세라 서둘러 가방을 싸고 교실을 나선다.

“야 근데 나 네 덕분에 느낀 게 있어.” 진민이가 계단을 내려가며 성윤이에게 말한다.
“뭔데?”
“내가 누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아까 너가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 느꼈어.” 꽤 진지해보이는 얼굴이다.
“응? 그래? 그럼 앞으로 자주 쓰다듬어 줄게.”
“아냐 근데 너무 자주 쓰다듬지는 말아줘. 머리 쓰다듬을 때의 그 쾌감에 무뎌지면 나중에 미래의 남친이 아무리 섬세한 손길로 쓰다듬어줘도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을 수 있잖아?”
“그래?” 성윤이는 웃음기가 섞인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민이가 막을 겨를도 없이 성윤이는 진민이의 머리를 격하게 한번 쓰다듬고 헝클어뜨리며 웃었다.
“우리 시험 잘 보자.”
“하... 할 수 있겠지?”
“당연하지. 우린 특별하니깐.”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얼른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책상 앞에 앉아 독서실에서 풀던 지구과학 문제를 마저 풀기 위해 책을 펴 놓는다. 내가 암석의 절대 연령을 왜 구해야 되지. 내가 고생대에 살던 생물을 왜 외워야 하지. 어쩔 수 없지. 하라고 하니 해야지.
“성윤아 수박 줄까?”
“응”
딸은 물론 엄마를 사랑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모녀의 대화가 줄어든 건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이분법적으로 두 부류가 있겠지만 그중 조금 부정적인 엄마들의 화법은 대개 이러하다. 
“공부를 열심히 안 하는데 머리가 좋아서 시험을 잘 보는 애들이 너무 싫어”
“너가 걔네가 공부를 안 하는지 어떻게 알아. 숨어서 열심히 하는 애들은 엄마 학창 시절 때도 있었어.”
“근데 이게 열심히만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시험은 운도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 
“네 노력이 부족했나 보지. ‘열심히’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니깐.”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안 했다는 거야?”
“꼭 그렇다기보단, 핑계대지 말고 그냥 하라는 거지. 원래 고등학생은 힘든 거야. 너만 힘든 것도 아니잖아.”
이러한 엄마의 화법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친 고등학생과 부모님과의 대화 빈도가 데크레셴도 형태를 띠게 하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엄마, 내일 6시에 나 깨워줘. 꼭”
“알겠어”
“꼭.”
“알겠다고.”
“안 일어나면 뺨이라도 때려.”
“아오 알겠다고. 어서 자.”
“싫어. 이거 풀고 잘 거야.”
“알아서 해. 엄만 잘게.”

그러나 다섯 시 반부터 깨웠다는 엄마를 향해 불신의 눈빛을 가득 장착한 채로, 여섯시 반에 왜 안 깨웠냐고 짜증을 내며 일어난 딸은, 부산스럽게 준비하고는 현관을 나선다. 물론, 시험을 앞둔 나날들은 신경이 예민하여 기분 좋은 날이 별로 없지만, 이날은 더욱이 우울한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그녀였다. 

등교를 한 뒤 성윤이가 자신의 책상에 가방을 올리자마자 반 친구 한 명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있잖아... 우리 오늘 남아서 발표 연습 하기로 했잖아.., 근데 나 오늘 못 남는데...”
여기까지 듣고 그녀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럼 연습하지 말자.”
친구는 그녀가 이유를 물어보고 다른 연습 날짜를 잡거나, 쉬는 시간을 빌려서 연습하자고 대안을 찾을 거라고 예상했는지 놀라면서 되물었다.
“진짜? 괜찮아?”
모둠활동에 크게 기여한 게 뭐가 있다고 연습마저 스멀스멀 빼려 하는지. 그녀는 내심 친구가 그래도 다음번에 한 번은 연습하자고 말하길 바랐다. 거기서 바로 ‘그래’라고 하는 걸 보고 속으로 한숨을 푹 쉬고는 교실을 나선다.

음악시간이다. 어김없이 안경을 머리 위쪽으로 올린 채 팔짱을 끼고 표독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신 선생님이 보인다. 교생 선생님이 음악 시간에 들어오신 적이 있었다. 너무 예쁘고 착해 보이는 교생선생님인데 우리 학교 음악 선생님의 수업을 배우러 왔다는 게 안타까웠다. 성윤이는 교생 선생님이 떠나시기 전에 쪽지에다가 
‘선생님, 우리 음악 선생님은 반면교사로 삼아주세요’라고 적어서 초콜릿과 함께 드렸다. 지루한 음악 시간에 쪽지를 적으면서 그녀는
‘이건 마치 론 위즐리가 할 것 같은 행동이네. 재밌는 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것으로라도 소소하게 재미를 찾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스스로를 연민했다. 
“회장!! 이거 버리고 가”
“네?”
“수업 끝나고 이것들 분리수거장에 버리고 가라고.”
“아? 네!”

음악 선생님이 버리고 가라고 하신 종이 뭉치를 잔뜩 안고 종이가 무너질까 봐 종이 탑의 꼭대기를 턱으로 누르면서 친구들 무리 제일 뒤에 조금 떨어져서 터덜터덜 걸어갔다. 약간의 고독을 느끼던 중이었다. 쓰레기를 다 버리고 가는데, 눈앞에 그녀가 키우는 가지가 보였다. 이름은 왼쪽부터 차례로 학교에 가지, 집에 가지, 학원에 가지다. 
화분에 심은 작물들, 수박, 가지, 옥수수, 감자, 딸기, 토마토, 깻잎, 상추... 바닥에 넓게 깔린 녹색 잔디밭, 저 멀리 보이는 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 잿빛 하늘이 미소를 은근하게 지었지만 푸르고 검은 구름이 신비로운 문양을 그리면서 하늘의 미소를 비웃음으로 바꾸어버리는 느낌이다. 그녀는 커다란 자신의 가지 화분 앞에 무릎을 꿇고 멍하니 가지를 들여다본다.
가지에는 영롱한 보랏빛의 꽃이 하나 피어있다. 왈칵 눈물이 난다. 다른 친구들 식물들은 무럭무럭 자라는데, 그녀의 식물만 안 자라는 것 같아서 어제까지 초조했던 것이 생각났고, 이제는 식물로도 경쟁심을 느끼고 열등감을 느끼는 자신에게 화가 났고,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예쁘고 영롱한 꽃을 피운 가지가 너무 고마웠고, 아무것도 모르는 가지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섞여 울컥했다. 그녀는 사실 그녀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동안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던 것은 자존감이 아니라, 잘 나오는 성적에 대한 자신감이었던 것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민감했다. 그녀는 자기자신을 인정해주지는 않으면서 타인에게는 인정받고자 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나를 사랑하는데, 나의 사랑으로 채워야 할 부분까지 타인에게 요구했다. 내가 스스로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해야되는지 알면서. 삶의 춤을 계속해서 당당하게 추고 있으니 나는 떳떳하게 성공할 자격이 있다는 걸 알면서... 타인의 인정을 요구한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음으로써 나는 가치있다는 걸 실감하고 열등감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행복은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개개인은 마치 자신의 피부같은 스스로의 의식에 들어가 있고, 오직 그 안에서만 살아가는 거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나를 도울 방법은 없다. 행복과 기쁨의 원천은 본질적으로 너무나 불안정하기에 가장 좋고 바람직한 것은 각자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장마철에 태어나 소나기를 먹고사는 가지여, 마법의 가지를 만들어주시겠습니까? 마법의 약을 줄 터이니, 마법의 보라색 열매를 달콤하고 강력하게 만들어주소서.'

가지 영양제를 흙에 꽂아주고는 그녀는 일어섰다.
웬일로 주말 아침, 대치 학원가가 적막하다. 밤새도록 거센 비가 왔던 터라 발목까지 축축한 빗물이 튀었다.
“비가 올 것 같은데 우산 가져가.”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우산을 챙기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었다. 학원에서 친구의 우산을 빌리든지 비를 맞든지 둘 중 하나였다. 해가 안 뜬 오전인데도 먹구름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뺨에 빗방울이 툭 떨어진다. 그래도 아직 우산을 편 사람은 많지 않다.

헉. 저기 보이는 기다란 형체는 그녀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거리에 학생은 결코 많지 않았고, 모두가 무채색인 와중에 채도 높은 색의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이란 남의 눈에 띄기 쉽다. 종이를 든 손을 편하게 내린 채로 걷다가 몇 초 뒤에 종이에 코를 박더니 매우 바쁜, 성공한 21세기 학생인 척 허리를 곧게 펴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양을 보니, 남자는 응당 자기를 보았을 것이다.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남자에게 자기의 기억이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 있어서든 외롭고 또 쓸쓸한 일이다.

성윤이는 남자와의 기억 당시의 자기의 그 대담한, 혹은 엉뚱하지만 고차원적인 화술이 그에게 적잖이 인상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자는 때때로 자기를 생각하여 주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단순히 떨리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멀어져 갔다.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암묵적으로 거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에 누구 하나 나서서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의례적인 포옹을 했고, 전처럼 그를 껴안고 있어도 그녀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녀의 일기장은 그의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는데, 그는 그녀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다. 그가 ‘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할 때 그녀는 순간 심장이 너무 저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와의 관계가 완전히 부서지더라도, 그녀는 미래에 이 사랑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심장이 따끔거렸다. 단순히 말랑말랑한 감정에 젖어서 따끔거린 것이라기보단 그냥 그의 얼굴을 보니 떠오른 온갖 일들과 최근에 더 고되고 힘들었던 학교생활이 겹쳐서 속에서 뭔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시험과 함께하는 칙칙한 일주일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걸어가자, 햇빛이 찬란하게 비치고 세상이 올바르게 자리를 잡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무들 사이 틈새로 널찍한 푸른 강이 보인다. 강 건너에는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었고 그 너머에는 거대한 대도시의 외곽이 보인다. 그 너머 하늘과 맞닿은 높은 나무도 보인다. 저무는 가을 태양이 하늘을 아름다운 노을로 물들여 놓았다. 금색과 보라색 구름들이 언덕 꼭대기에 걸쳐져 있었고, 불그레한 빛 속에서 은색으로 빛나는 높고 하얀 건물들은 ‘천상도시’의 첨탑 같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야!” 
“맨날 여기 올 수 있으면 좋겠다. 볼 때마다 새롭고 늘 장관이라 질리지 않아.” 성윤이는 멋진 풍경을 글로 옮기고 싶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다들 오늘 시험 얘기는 하지 말자.”
“넌 잘 봤는데 뭘 얘기하지 마... 얘기하면 안 되는 사람은 나야. 난 진짜 시험이랑 안 맞는 것 같아.”

성윤이는 생각했다. 학교가 뭔데, 교육시스템이 뭔데 우리를 평가하지? 원래 평가는 능력 있는 존재가 능력 없는 존재에게 하는 것 아닌가? 교육시스템이, 학교가, 나보다 능력있고 가치 있는 존재인가? 원인 모를 실수로 서술형을 몇 점씩 각이고, 객관식 문제를 틀리고, 그로 인해 한 등급이 떨어지고, 인생이 바뀐다는 사실이 참 우울하다. ‘우울하다.’ 이 형용사 하나로 그녀가 느끼는, 그리고 모든 고등학생들이 느끼는 낙담과 중압감을 이루어 표현할 수 잇을지는 의문이다. 그녀는 작년에 성적과 관련된 물음에 종종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예쁘게 포장하기도 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것도 있고, 잘한다는 말을 줄곧 들어왔으니 실망시키기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순간 그녀는 조용히 다짐했다. 이 입시 대장정이 끝날 날도 머지않았는데, 혹시 나 자신을 포장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담백하게 진실을 마주하려고 노력하겠다고. 
“아 그냥 시험의 ‘시’자도 꺼내지 말고 놀자.” 
성윤이와 친구들은 돗자리에 둘러앉았다. 기말고사 서술형 확인을 하느라 바쁘고 우울했던 나날들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끽할 준비를 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멋진 저녁식사를 위해 부산하게 움직였다. 다들 음식을 펴놓고 동그랗게 둘러앉자, 채윤이가 무척 기분 좋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얘들아 내 친구가 되어줘서 너무 고마워!”
“나도. 우리 학교에서 이렇게 멋진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나도! 너네가 없다면, 고등학교라는 험난한 3년의 항해를 끝마치지 못할 거야. 우리 졸업하고도 계속 친하게 지내자!”
“당연하지. 할머니가 되어도 같이 놀러다니면서 살자.”

행복했다. 그런데 불안했다. 그녀는 친구들이 모두 좋은 대학에 갈 때, 혼자서만 대입에 실패하고 친구들을 잃을까봐 두려워졌다. 최근 들어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 속에 있으면서도, 분명히 행복한 순간에도, 막연한 불안감에 우울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거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아마도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구들도 모두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풀밭에 드러누운 성윤이는 아까 자기를 보고 놀라 도망쳤던 개미를 사탕으로 유인하면서 말했다.
‘얼마나 열심히 치열하게 최선을 다했든, 결과가 안 좋으면 스스로도 내 치열하고 아름다웠던 최선의 시간들을 다 잊지 않을까? 난 열심히 하고 있고, 지금의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좋은데, 결과가 안 좋으면 과정을 전부 부정하고 나 자신을 미워할 미래의 내가 무서워. 극한으로 나를 내몬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뿌듯하게 입시를 마무리할 수 있을까?’

성윤이의 씁쓸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채윤이는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을 차분히 올려다보며 명랑하게 대꾸했다.
‘무섭다는 감정도, 그런 걱정도 결국엔 다 미래의 성윤이가 상처받을까봐 가지게 되는 거니까 넌 언제나 널 사랑할거야. 주변과 비교가 될까 봐 불안하고 충분히 높은 곳이 아니면 자기혐오에 빠질까 봐 두려워 나도 너무 두려워... 그치만 너무 자연스러운 감정이라서 막을 수가 없는 것 같아. 내가 하루를 밀도 있게 보낼 때 그나마 조금 안심되는 정도...  만약에 정말 만약에, 너가 힘들 때가 생기면 내가 옆에 있을 거고, 다른 애들도 옆에 있을 거야. 지금은 가끔 눈물나는 날도 있는 거지만, 내년 말에는 활짝 웃고 있을거야.’
그녀에게 친구들은 너무나도 힘이 되는 존재였다. 혼자였다면 이 힘든 항해를 헤쳐 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윤이의 친구들 중에는 정말 착하고 멋진 친구들이 많다. 어떤 친구들의 눈은, 그 어떤 선생님의 설교보다, 뜻깊은 노래 가사보다, 열렬한 독서보다 그녀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자신만의 소박하고 이타적인 방법으로 이 세상의 삶을 조용히, 그리고 아름답게 바꿔주고 있는 듯했다. 그래, 우리 모두 다가오는 열아홉은, 단편적인 결과나 다른 사람들의 화려함에 연연하느라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이고, 잘될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우리 모두 타인의 시선보다는 내 안의 힘을 더 소중히 여기는 강인한 어른으로 무르익을 수 있기를 바란다. 경기여자고등학교 2학년 모두 진심으로 응원한다. 

선택과목 이동 수업 전 쉬는시간, 학교 복도는 아수라장이 된다. 화학실에서 나온 성윤이는 번잡한 복도를 빠른 속도로 걸어 복적지로 향했다. 생명과학 교실에 도착해서는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가 친구가 맡아놓은 그녀의 자리에 털썩 하고 앉았다. 
“오늘 수행 점수 확인인 거 알지?” 성윤이가 말했다.
“아 진짜? 하... 정말 싫다. 반영비 높아서 깎이면 안 되는데...”
“에이 설마 감점되겠어?”
“안돼! 절대 안 된다고.”
친구는 유난히 수행평가를 무서워했다. 비단 수행평가뿐 아니라 뭐든지 완벽하게 해야되고, 뭐든지 그녀의 마음에 들 때까지 끝내지를 않는다. 성윤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아니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을 보면 자꾸 나 스스로 열심히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되고, 욱한 감정과 죄책감이 조금씩 올라오는 것이 싫어서 친구를 아니꼽게 느끼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선생님께서는 아직 교실에 오시지 않았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조금 감점된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에서 인용

수행평가를 조금 감점되더라도, 열심히 했지만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와주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려고 한다. 자신이 완벽해야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녀는 온 인생을 낭비하게 될 테니까. 
종례가 끝나고 질문을 하기 위해 교무실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며 서성거렸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다같이 수다를 떨었다. 성윤이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몸으로 박테리오파지를 재현하고 있었다. 멀리서 선생님이 걸어오셔서 친구가 눈치를 줬지만, 성윤이는 오히려 선생님을 멈춰 세운다. 
“선생님!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왜?”
“박테리오파지에요!” 성윤이는 공중으로 높게 뛰며 다리와 팔을 각지게 접으면서 소리쳤다.
선생님께서는 맙소사!라는 얼굴을 지으면서 호탕하게 웃으시고는 떠나셨다. 성윤이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에 있는 ‘맙소사’ 표정을 인간이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은 참이다. 결국 기다리던 지구과학 선생님은 못 만나고 교실로 돌아왔다. 가방을 챙기다가 갑자기 할 게 너무 많다는 걸 지각한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결국 학교 끝나고 25분 동안 한 게 없어.”
조금의 정적이 흘렀다.
“재미를 얻었잖아. 행복했잖아!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
“어...? 그러네...?”
가방을 메고 학교를 나섰다. 학교에 있는 작은 분수, 성윤이가 장난치다가 퐁당 빠져서 온몸이 쫄딱 젖게 만든 그 분수가 그날따라 더 시끄럽게 물을 뿜어댄다. 분수와 관목 수풀, 잔디가 넓게 깔린 뒤뜰과 알록달록한 꽃밭을 갖춘 이 학교는 그래도, 학교에 대한 반감을 0.01% 줄여주는구나.
해가 지고 날이 어스름해졌다. 성윤이는 자기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하루가 별나게 길게 느껴진다. 불과 몇 시간 전, 친구들과 시끄럽게 수다를 떨던 일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졌다. 성윤이는 이렇게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얇은 이불을 덮고 누워, 글을 구상하거나, 꿈을 꾸거나, 소설을 읽는다. 심심한 그녀는 문득, 그녀의 옛날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어느새 일기를 쓴 지도 7년째에 접어들었다.
푸른색 양장본 표지에 예쁜 어린 왕자가 그려진 일기장의 가장 첫 번째 장에는 고등학교 입학식 전날에 쓴 일기가 있었다. 
‘열일곱, 고등학생이 되었어. 중학교 생활이 영화처럼 빠르게 지나가는데 참 즐거웠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사회적 성공과 개인적 성공, 물질적 가치와 비물질적 가치, 뭐가 더 중요할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고민을 함께한 소중한 다섯 명의 친구들 덕분에 더욱 행복했던 것 같아. 앞으로 나에게 어떤 삶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알지 못해. 나는 내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나갈 것이고, 최선을 다할 거야. 대입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어. 공부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고, 내 인생을 아울러서 내가 가야 하는 길에 확신을 가지고, 믿고, 믿음을 주는 원천이 되는 노력을 쏟아붓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 중학교 생활 수고 많았어. 사랑해 성윤아.’
그녀는 자신의 1년 반 전의 작문 능력에 상당히 놀라던 참이다. 그 시절의 일기는, 자신이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필력이 퇴화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 넘기다 보니 고등학교 생활 도중에 쓴 일기들은 부정적인 내용들이 많았다. 한탄, 자책, 다짐의 반복이었다. 
‘나는 요즘 내가 싫어. 오만해지기에는 우스운 위치임에도 내 아래를 보면서 자존감을 충당하고 내 위를 보면서는 또 한숨을 쉬지. 공부는 나 스스로와의 싸움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독서실에서 열심히 하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괜스레 짜증이 나고. 왜 그렇게 사람이 꼬인 건지. 열심히 하는 친구를 그저 열심히하는 애로 바라봐줄 순 없는 건지. 어제의 나와 경쟁할 순 없는 건지. 나는 내가 열심히 산다고 자부해왔어. 오늘도 열심히 잘 살았고. 그런데 요즘 들어 열심히 사는 행위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열심히’와 ‘잘’은 동치가 아닌데, 난 전자에만 해당하는 것 같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정말 몰입했는가, 오늘 하루를 일말의 후회도 없게 살았는가? 질문해본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선뜻 ‘아니, 나 열심히 안 했어.’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 열심히 잘 살고 있다. 수능은 열심히 하면 결과가 보장되는 시험일까? 아마 그 누구도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낮다고 공부를 접을 것은 아니기에, 그냥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제 나는 내 목표에도 떳떳해지기로 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성적과 목표의 괴리가 심하면 속상하니깐, 말해놓고 못 지키면 민망하니까, 비웃음을 살까봐, 가지각색의 이유로 내 목표를 낮추어왔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랬다. 목표는 의무도 아니고 약속도 아니라고. 월백도 다정하니 잠 못 드는 날이다. 내일 하루도 힘내서 살아가길 바란다.’
고등학교 2학년도 거의 끝나가는구나. 고등학생의 꽃, 고3은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많이 힘들었나 보다. 일기장에 공부의 고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저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많은 공부를 소화하고, 훨씬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1년은 어떻게 될까?’ 
고등학교 2학년의 눈에 고등학교 3학년은 세상의 종말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막상 닥쳐보면 열아홉 살도 그리 암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니, 성윤이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어둠과 달빛, 무성한 녹음으로 점철된 시간은 행복과 평화의 향기로 바뀌어 창문 너머로 들어왔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젊음을, 평범한 사람에게는 특별함을,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유함을, 공부에 찌든 초췌한 고등학생에게는 아름다움을 주는 시간이었다.

어느 삶에든 얼마만큼 비는 내리는 법,
어느 정도는 어둡고 쓸쓸한 날들이 있게 마련이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의 시 ‘The Rainy Day’에서 인용

고등학교 2학년, 열여덟의 우리들은, 가장 행복하고, 가장 축복 받은 사람조차도 근심, 고통, 상실, 실패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우리는 행복할 거야. 당장 단편적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네가 가진 행복을 잘 지키도록 해. 우리는 분명 성공적인 수확을 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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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연세대

이성윤 멘토

  • 🏆 제22기 목표달성 장학생
  • 🙆 연세대학교 간호학과 26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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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군지 일반고 #학종 #정시를 가장한 수시 #IN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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