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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날사랑해줄건가요?

이름 : 이성윤  스크랩
등록일 :
2026-08-01 00:23:45
|
조회 :
22,246

 

그래도... 날 사랑해줄 건가요?

여러분들의 애착 곰인형이 있다고 해봅시다.

곰인형이 말했습니다.

“난 진짜 곰이 아니야. 난 크지도, 용맹하지도 않아. 난 그냥 짧고 부드러운 털이 나 있는 작은 곰인형일 뿐이야. 진짜가 되고 싶어.”

“진짜라는 건, 어떻게 생겼는가, 어떤 특징을 가졌고 어떤 부류에 속하는가를 말하는 게 아니야. 그냥 너를 뜻하는 거야. 내가 오래오래 너를 사랑해주니까 넌 진짜인 거지.”

“내 털이 다 닳아버리고, 두 눈도 빠져버리고, 꾀죄죄해지고 헐렁해진다면……. 그래도… 날 사랑해줄 거야?”

“걱정할 것 없어. 일단 ‘진짜’가 되고 나면 미워질 수가 없거든. 넌 이미 나의 ‘진짜’란다.”

 

우리도 고3이 되면서 곰인형처럼 이상한 질문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대학에 못 가더라도, 그래도… 날 사랑해줄 건가요?”

친구들과 급식을 먹다가 누군가가 불쑥 이야기합니다.

“얘들아, 내가 대학에 못 가더라도 계속 나랑 친구해줄 거지..?”

선생님께서 내년에 밥 사주시겠다고 하면 되묻습니다.

“제가 대학에 가지 못해도 사주시나요...?”

늘 나를 응원해 주고 투자해 주시는 부모님께도 묻습니다.

“엄마, 내가 대학 못 가도 여전히 엄마 딸이지…?”

 

저 또한 무서웠습니다.

대학에 가지 못한다면, 제 실패를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응원을 받을수록 오히려 더 두려워졌던 것 같습니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왜 응원을 하고, 왜 위로와 용기를 주냐며 울화가 치밀 때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혹시라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 앞으로는 그런 숱한 응원의 말들도 받지 못할 것만 같이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는 실패보다 '사랑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마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사랑받기 위한 조건을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더 사랑스러워지고, 어떻게 하면 덜 사랑스러운지에 관한 암묵적, 명시적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대학에 간다면...'

'내가 ○○학과에 간다면...'

'내가 더 잘생겨진다면...'

'내 애인이 더 훌륭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가치에 전제조건을 잔뜩 붙여놓는 거죠.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19살, 20살, 21살의 우리들이 11월 하루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일지 모릅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가치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정해진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고

좋은 대학이야말로 그 첫 번째 단추라고 믿고 있는 것이죠.

오랫동안 우리는 그렇게 믿도록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대의 상상력에 너무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진짜’가 되는 데에 전제조건이 왜 필요한가요?

수능을 잘 보면 성공이고 못 보면 실패인 건가요?

 

“성공”.

여러분들이 노력한 것에 대한 정당한 결과가 주어지는 것은 축하할 일입니다.

앞으로도 노력을 보상 받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열심히 살아갈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수능을 잘 보았으니 역시 난 가치 있는 사람이었어’ 따위의 생각은 몹시 위험합니다.

혹여나 현재 노력하고 있는 이유가 수능을 잘 보아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면 태도를 바꾸시길 바랍니다.

수능의 결과로 본인의 가치를 판가름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가치는 이미 증명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날에도 하루를 버텨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성과가 없는 날에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며 이 버거운 세상을 20년가량을 살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그 무엇보다 빛나는 삶입니다.

 

“실패”.

수능을 못 보았으니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건가요?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감히 저런 문장을 쓰고 있는 것조차 몸서리가 나네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깁니다.

온 마음을 다해 도전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해 다른 길로 접어든 삶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삶이에요.

만약 온 마음을 다해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 도전에서 이루지 못했더라도 조금 돌아갈 뿐,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천천히 수렴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애초에 저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인생은 성공작과 실패작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작품으로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능 하나에 여러분의 존엄과 가치가 흔들린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다치지 말고 공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누군가의 ‘진짜’입니다.

성적이 좋든 나쁘든 수능을 잘 보든 못 보든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사랑받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받을, 너무 멋진 ‘진짜’ 존재들입니다. 

아마 제가 이렇게 얘기해도 잘 와닿지 않으시겠죠?

저도 입시가 마무리되고도 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짜’였고, 사람들이 응원하는 것 또한 ‘나의 성적’이 아니라 ‘나’라는 걸요.

여러분 한명한명이 그들에게 ‘진짜’이기 때문에, 그들이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응원하는 것이고, 여러분이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알기에 믿어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제 수험 생활은 조금 덜 힘들었을텐데...

그래서 여러분들께서는 이 사실을 더 일찍 아셨으면 좋겠는 바람입니다.

 

혹시나 실패했을 때 주변인들의 시선이 너무나 두렵다면 저를 믿으세요.

여러분을 ‘진짜’로 여기는 사람들은 혹여나 여러분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냈을 때,

‘쯧쯧… 걘 ○○대학밖에 못 갔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관계는 거기까지였던 거죠.

여러분의 인생을 갉아먹을 사람이 일찍 드러나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여러분을 진심으로 아끼는 부모님과 친구, 선생님이라면 성적 하나로 여러분의 가치를 판단하지는 않을 겁니다.

 

혹시 앞으로도 또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 날이 있다면,

'그래도… 날 사랑해줄 건가요?'

그때는 이 말을 꼭 기억해 주세요.

이미 누군가의 '진짜'인 사람은 결과 하나로 사랑을 잃지 않습니다.

 

나를 ‘진짜’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을 리는 없습니다.

일단 여기 필자 한명 있네요. 

부디 어둠이 닥칠까봐 너무 이른 불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지 않길 바랍니다. 

 


다음 칼럼을 언제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잘 지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추천 한번씩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곰인형 이야기는 Margery Williams『벨벳 토끼(The Velveteen Rabbit)』의 일부 대화를 모티프로 재구성하였습니다.



  • 이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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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이성윤 멘토

  • 🏆 제22기 목표달성 장학생
  • 🙆 연세대학교 간호학과 26학번
  • 📖 수시 전형
  • #학군지 일반고 #학종 #정시를 가장한 수시 #IN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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