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조금 일찍 D-100 이야기를 써보았지만, 진짜 D-100이 찍히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수험 생활 동안 몇 달 뒤, 1년 뒤의 ‘나’를 많이 상상했습니다. 수능을 잘 봤을지, 어느 대학에 들어가고 어떻게 지내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동시에 “원하는 미래를 위해서 성적 향상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래저래 생각이 참 많은 학생이었는데, 올해 멘토 활동을 하면서 여러분 또한 각자의 생각과 걱정이 많다는 것을 절감하고, 또 깊이 공감했습니다.
문득 작년의 그날에, 저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했는지 궁금했습니다. 플래너를 찾아보니 D-100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포부가 쓰여있더군요. 그리고 쉬는 시간에 메가스터디 캐스트를 찾아보고, 목달장 선배들의 칼럼을 읽으며 들뜬 마음으로 공부했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올랐습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듯,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도 작년의 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주 칼럼에서 0.1점 차이로 갈리는 냉혹한 입시 현실과 파이널 로드맵이라는 전략을 다루었다면, 오늘은 진짜 D-100을 맞이하는 수험생에 대한 제 생각과 100일 뒤 수능 시험장에 서 있을 여러분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8시 40분
8시 40분. 이 숫자를 보면 아직도 떨림이 남아 있습니다. 수능을 시작하는 시각이자, 그날 하루 중, 어쩌면 지금까지의 삶을 통틀어 가장 집중하는 순간입니다.
이제부터 신체리듬을 수능 날로 맞추는 연습을 하면 좋습니다. 모든 요일을 그렇게 할 필요는 없고, 주 1~2일 정도 실제 수능 시간표대로 공부하면 충분합니다.
그 시간에 꼭 실모를 풀 필요는 없습니다. 핵심은 타임 어택 속에서의 높은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교시 수학 시간에 N제 문제 중 12문제를 골라두고, 100분이라는 시간 내로 푸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실전 연습을 해야지만 수능 당일의 중압감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지금이 X일 뒤 수능 날이라 생각하고 긴장감을 가지며 문제 푸는 연습을 해봅시다.
#불확실함 속 불꽃
수험 생활이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미래의 불확실함 때문입니다. '오늘 이 공부가 의미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마음을 갉아먹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필가 전혜린 선생님은 그녀의 글 「먼 곳에의 그리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 영혼에 언제나 고여 있는 이 그리움의 샘을 올해는 몇 개월 아니, 몇 주일 동안만이라도 채우고 싶다. 너무나 막연한 설계―아니 오히려 '반설계'라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플랜은 그것이 미래의 불확실한 신비의 속해 있을 때만 찬란한 것이 아닐까? 동경의 지속 속에서 나는 내 생명의 연소를 보고 그 불길이 타오르는 순간만으로 메워진 삶을 내년에도 설계하려는 것이다.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아마 유일의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해 본다.
전혜린, 「먼 곳에의 그리움」 中
모든 계획은 미래의 불확실한 신비에 속해 있을 때 비로소 찬란해집니다.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 열심히 공부할 이유가 없죠. 100일 뒤의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기에, 지금 여러분이 보낼 100일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미래의 불확실함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연소되는 듯한 몰입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낼 목표를 갈망하며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것 자체가 수험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남은 100일은 점수를 올리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깨부수고 완벽한 몰입의 경험을 만들어가는 찬란한 시간이길 바랍니다.
#100일의 기적
많은 이들이 요맘때쯤 되면 로또 같은 기적을 꿈꿉니다. 하지만 시험에서 일어나는 진짜 기적은 성적표에 찍히는 숫자 이전에 내 행동과 마음의 변화에서 일어납니다.
100일의 기적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100일 만에 성적이 급변한 사례들은, 그 이전부터 꾸준히 쌓아온 공부와 공부 습관을 정립했기에 지금에서야 변화가 생긴 거죠.
최근 한 수험생분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셨습니다.
'멘토님은 공부가 하기 싫거나 하려고 해도 힘이 안 나는 경우 어떻게 하셨나요.. 요즘 너무 지치고 잠이 계속 와요ㅠㅠ 동기부여도 이제 한계인 것 같아요..
저의 답변은 한 문장이었습니다.
공부했습니다.
답글을 남기고 나서 너무 냉정하게 말한 것은 아는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흔히 매체에서, 위와 같은 수험생의 질문에 대해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등 취미 생활을 즐겼다는 답변이 많아서 쉬는 것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부야 늘 하기 싫죠. 특정 과목만의 공부라면 모를까, 수능 공부가 재밌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공부가 하기 싫은 순간에도, 열 번 중 아홉 번은 참고 책상 앞에 앉는 태도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성적 향상은 어렵습니다. 정말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순간에 잠깐 취미 생활을 즐겼다는 선배들의 답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물론 완벽히 통제된 100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힘듭니다. 중간에 번아웃이 올 수 있고, 지독한 감기에 걸릴 수도 있죠. 그럴 때는 잠시 숨을 고르는 것도 필요합니다. 저 역시 리프레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작년 8월,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잠깐 보러 갔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만 보고 다시 돌아와서 공부했습니다.
앞으로의 100일은 지난 1년과 비슷한 크기의 밀도를 가집니다. 하루가 지난 과거를 책임질 수 있고, 반대로 무너뜨릴 수 있겠죠. 그러니 번아웃이 와도 잠시 문화생활을 즐기고, 다시 돌아와서 공부하는 탄성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죠. 잠깐 흔들리거나 페이스가 무너지더라도 다시 책상 앞에 앉는 그 의지가 결국 100일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 “아파하지 않았으면”
“아프지 않았으면”이라는 말은 다소 수동적인, 오직 몸의 아픔만을 떠오르게 하지만, “아파하지 않았으면”은 좀 더 능동적이고 마음의 아픔까지 포괄하는 단어 같습니다.
남은 100일 동안 가장 당부하고 싶은 말입니다. 마음이 조급해질수록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기 쉽습니다. 하지만 수험 생활이라는 긴 레이스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여러분의 건강입니다.
그동안의 칼럼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최선을 다하세요, 저건 좋지 않습니다.” 식의 조언을 많이 했습니다. 저의 이런 생각들은 마치 제가 시행착오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공부한 것으로 비춰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돌이켜봤을 때 후회했던 공부, 습관, 행동이 있기에 다른 사람은 그 방황을 안 겪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저의 실패를 토대로 한 조언입니다.
저라고 지난 수험 생활을 반추했을 때 후회가 없을까요?
“그때 열심히 할 걸”, “~를 효율적으로 하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가장 크게 후회하는 게 있다면 깊게 아파했던 것입니다. 몸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지만, 과도하게 걱정하고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작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작년의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당신에게도, 이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칼럼 마칩니다.
#오늘의 시 추천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는 건 당연한 과정입니다. 다만 꺾이지만 않으면 됩니다. 힘듦이 없다면 행복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요? 지금의 힘듦이 있기에 내년에 더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100일 뒤 만개할 여러분의 꽃을 기대하며 이 시를 추천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고려대
권기범 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