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추석은 잘 보냈는지요.
저는 추석에 어디 내려가지 않았는데요, 아마 대다수의 수험생 여러분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목요일부터 이어진 긴 연휴였습니다.
이제 수능 전까지 개천절과 한글날, 단 두 번의 휴일만이 남았습니다.
특히 현역 학생들에게 휴일은 소중한 시간입니다. 평소에는 하루 종일 온전히 자습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보통 휴일에는 날을 잡고 취약한 파트나 과목을 집중적으로 파고듭니다.
이번 추석 연휴 역시 여러분의 약점을 충분히 보완한 귀한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이제 ‘덥다’라는 표현은 어느덧 어색해졌습니다.
여름은 정말 지나간 것 같고, 가을의 한가운데 서있는 기분입니다.
수험생 시절을 돌이켜 보면, 계절의 온도를 헤아릴 시간조차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여름의 더위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여름철에는 에어컨 때문에 긴팔 옷을 입기도 했죠.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맞이한 올해는 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계절감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내년에는 쫓기듯 지나가는 계절이 아니라, 날씨를 이루는 햇살과 바람 하나하나를 음미할 수 있는 풍성한 사계절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요즘 창밖을 보면 날씨가 참 청명합니다.
하늘이 푸름을 좋아할 거창한 이유는 딱히 없는데, 구름 한 점 없는 날에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저와 같은 기분이겠죠?
많이 바쁘지만,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굽어진 어깨와 목을 펴주는 여유를 가져보세요.
그리고 일교차가 크니 감기 조심하세요. 저는 조심하지 못했습니다.
남은 기간, 컨디션 관리도 실력이자 전략이라는 점 잊지 마세요.
#D-50
D-100이라는 숫자에 싱숭생숭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어느덧 수능이 50일가량 남았습니다.
이맘때 저는 마음속에서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내일 당장 수능을 보고 이 레이스를 끝냈으면 좋겠다.’
‘아직 해야 할 게 많은데,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수험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내일 수능 보고 끝내고 싶으나, 내일 끝내버리면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뻔히 보여서 더 시간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댓글로 여러분과 소통해보면 이 시기에 실전 모의고사로 고민이 많다고 느낍니다.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실전 모의고사 점수에 매몰되지 마세요.
실모 점수는 여러분의 실력을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실모는 단지 실전의 압박감 속에서 내 행동 강령을 점검하고, 돌발 상황에서 멘탈을 수습하는 법을 익히는 '모래주머니'일 뿐입니다. (가끔 모래주머니가 아니라 대포알이 달려있기도 하지만요..)
점수가 잘 나왔다고 자만할 이유도, 낯선 함정에 걸려 미끄러졌다고 절망할 이유도 없습니다. 사설 문항 특유의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 불안해하지 말고, “평가원이라면 이 지점에서 어떤 논리를 요구했을까?”를 되짚는 오답의 도구로만 담담하게 소비하세요.
그리고 어렵고 지엽적인 문제는 오답하지 않고 넘기는 쿨함도 필요합니다. 가끔 보면 '풀지마'라고 적혀 있는 문제가 있는데요. 그런 건 굳이 오답할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매번 말씀드리지만, 아무리 실모여도 점수가 잘 나오고 못 나온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실모의 의의입니다.
#기출의 역설
요맘때 되면 다들 N제와 실모를 활용한 무한양치기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간혹 중위권 학생 중 사설 문제를 안 풀고 기출 문제만 붙잡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출을 완벽하게 끝내고 싶어서”, “회독을 더 돌려야 마음이 놓여서” 등 저마다 이유는 분분하지만, 냉정하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진짜 이유는 하나입니다.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고 틀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기출은 평가원이 앞으로의 출제 방식을 예고하는 소중한 이정표입니다.
하지만 수능 날 여러분이 마주할 문제는 기출 문제에서 봤던 문제가 아닙니다.
‘까놓고 보면’ 기출과 닮아 있을 수 있으나, 시험장에선 긴장 때문에 그 유사성을 포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결국 새롭게 마주한 문제를 당황하지 않고 시간 내에 풀 수 있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지금 낯선 문제 앞에서 많이 깨져봐야 수능 시험장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드리면 또 극단적으로 기출을 버리고 사설에만 매몰되는 친구들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수학과 과탐은 지금부터 수능 날까지 낯선 상황에 대한 대응력, 타임어택을 위해 사설만 풀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국어만큼은 수능 날 아침 예열 지문을 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평가원 텍스트를 절대 놓아서는 안 됩니다.
다른 과목과 달리 국어는 사설이 따라할 수 없는 평가원 특유의 지문 구성과 선지 출제 패턴이 있습니다.
사설을 연달아 풀며 평가원 특유의 감각이 무뎌졌다고 느껴질 때마다, 평가원 기출로 돌아와 감을 되찾는 회독 과정을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 시기에는 사설과 기출을 7:3~8:2 수능 직전에는 1:1로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독서는 17학년도부터, 문학은 22학년도 문제부터 푸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혹시 2028학년도 예시문항을 안 푼 친구가 있다면 꼭 푸세요. 이 또한 평가원이 출제한 소중한 문제입니다.
조급함과 불안함, “지금 한다고 과연 결과가 바뀔까?”라는 의심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죠?
하지만 50일 전의 여러분과 지금을 비교하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못 풀던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고, 개념책을 다시 읽어보면, 예전에는 안 보이던 ‘당연함’이 눈에 보입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점수는 안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가능성은 가시적이지 않죠.
이전 칼럼에서 가능세계에 대해 말씀드린 내용 기억하시나요?
만약 미래에 수능을 잘 봤다면 분명 오늘도 열심히 공부했을 거예요. 수능을 잘 볼 가능세계와 유사성이 높은 현실을 남은 50일간 만들어 봐요.
오늘도 파이팅!!
#추신
고려대 사진과 칼럼을 많은 분들 요청하셨는데요. 다음주에 있을 고연전을 마치고 고려대에서의 1년을 다룬 칼럼을 쓰고 싶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진으로 보고 싶은 것(ex 단과대 건물, 도서관 등)이 있다면 편하게 댓글로 남겨주세요. 최대한 예쁘게 찍어서 올리겠습니다.
이 외에도 수능 전까지 꼭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고민, 주제가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오늘의 시 추천
텅 빈 충만 - 고재종
저는 이 작품을 사설 모의고사에서 처음 접했는데요. 틀린 문제를 오답하면서, 시험장에선 미처 알지 못했던 시의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제목에 역설법을 사용했는데, 문학에서 역설은 얼핏 봤을 때 말이 안 되지만, 깊이 헤아려보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고 나아가 공감된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텅 빈 충만’은 올해 11월 20일, 수능 끝난 다음 날 학원에서 짐 뺄 때 알 수 있을 거예요. 텅 빈 자리와 책꽂이를 보며 가슴의 벅차오름과 후련함을 꼭 느끼길 바랍니다.
이제 비울 것 다 비우고, 저 둔덕에
아직 꺾이지 못한 억새꽃만
하얗게 꽃사래치는 들판에 서면
웬일인지 눈시울은 자꾸만 젖는 것이다
지푸라기 덮인 논, 그 위에 내리는
늦가을 햇살은 한량없이 따사롭고
발걸음 저벅일 때마다 따사롭고
들국 떨기는 거기 그렇게 눈 시리게 피어
이 땅이 흘린 땀의 정갈함을
자꾸만 되뇌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간간 목덜미를 선득거리게 하는 바람과
그 바람에 스적이는 마른 풀잎조차
저 갈색으로 무너지는 산들 더불어
내 마음 순하게 순하게 다스리고
이 고요의 은은함 속에서 무엇인가로
나를, 내 가슴을 그만 벅차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청청함을 딛고 정정함에 이른
물빛 하늘조차도 한순간에 그윽해져서는
지난 여름 이 들판에서 벌어진
절망과 탄식과 아우성을 잠재우고
내 무슨 그리움 하나 고이 쓸게 하는 것이다
텅 빈 충만이랄까 뭐랄까, 그것이 그리하여
우리 생의 깊은 것들 높은 것들
생의 아득한 것들 잔잔한 것들
융융히 살아오게 하는 늦가을 들판엔
이제 때 만난 갈대만이 흰 머리털 날리며
나를 더는 갈 데 없이 만들어버리고
저기 겨울새 표표히 날아오는 들 끝으로
이윽고 허심의 고개나 들게 하는 것이다
고려대
권기범 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