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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꿈은 무엇인가요

권기범  스크랩
2026-11-05 08:18:11
13,538

 

 

창밖으로 하나둘씩

나뭇잎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깊어지는 계절입니다.

여름내 한 가지 색으로만 치열하게 푸르렀던 이파리들이 시나브로 붉고 노란 빛을 머금더니, 이제는 보도블록 위로 하나둘 내려앉아 바스락거리는 안부를 건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끝에 스치는 낙엽과 가로수의 물든 풍경은 우리가 얼마나 긴 시간을 건너왔는지를 소리 없이 일러줍니다.

 

 

 

 

하지만 계절이 이토록 선명하게 무르익는 동안에도, 책상 앞에 앉은 우리의 시간은 오직 달력의 줄어드는 숫자 위에서만 흐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거리 위로 내려앉은 낙엽을 보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보다 ‘벌써 11월’이라는 조바심이 앞서는 시기입니다.

당장 눈앞의 모의고사 점수와 줄어들지 않는 오답 문제가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이 길목에서, 여러분에게 조금은 느닷없는 질문을 하나 건네보려 합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아마도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은 실모 점수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약점 파트, 그리고 자기 전 불쑥 찾아오는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당장 눈앞의 한 문제를 더 맞히는 요령이 절실한 이 시점에, 왜 하필 꿈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다섯 개의 선지 중에서 정해진 정답을 고르는 연습만 해오느라, 정작 내가 원하는 삶의 문장을 쓰는 법은 잠시 잊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수험 생활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성적표에 찍힌 숫자나 대학의 합격증 자체가 인생의 최종 목적인 것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이번 수능을 무조건 잘 봐야만 한다’는 무거운 당위성과 압박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어깨를 짓누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시험 하나에 내 인생 전부가 걸려 있다”는 비장함을 내려놓고 “잘 보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시험장에서도 침착하게 본래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각자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의 한 정거장일 뿐, 그 사람의 가능성 전체를 규정하는 종착역이 아니기에, 때로는 빈틈없는 확신과 철저한 설계보다 막연한 믿음과 반설계(反設計)가 더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꿈이 무엇이냐’는 이 물음 앞에서 “나는 아직 뚜렷한 장래희망이 없는데”라며 막막해할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제가 이번 여름방학에 읽었던 최인훈 작가의 소설 『광장』 속 한 구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중립국”으로 잘 알려진 이 작품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보람 있는 일이라면 도깨비하고 흥정해도 좋다고 뽐내지만, 도깨비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모르고 하는 소리다. 교수의 강의를 짐짓 낮추어 본다. 신, 이 일을 풀지 않고는 모두 쓸데없다. 사치가 아니라 나한텐 사무치는 허전함이다. 이러면서, 허전함과 맞서본다. 어떤 책에서고 Dialektik의 D자만 보아도 반한 여자의 이름 머리글자를 대하듯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은근히, 늙은 군인이 훈장 자랑하듯 보람을 느낀다.

- 최인훈, 『광장』 中 -

 

 

마르크스주의에 매료된 작중 주인공 명준이 변증법을 상징하는 ‘Dialektik’의 첫 글자 ‘D’만 보아도 마치 짝사랑하는 여인의 이니셜을 마주한 것처럼 설렌다는 대목입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제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Education’의 ‘E’를 본다고 해서 명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예전부터 자연스럽게 교육자가 되겠다고 생각했고, 사범대를 지망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제법 소질이 있고, 그 일이 제 적성에 잘 맞을 것이라 믿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진로가 적성에 꼭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 품었던 꿈과 미래의 진로 사이에서 저는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대학생이 된 저 역시, 아직 뚜렷하게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장래희망은 없는 셈입니다.

제가 이 고민을 꺼내어 놓는 이유는, 꿈이란 결코 완벽하게 정해진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서입니다.

 

 

 

 

활자 한 글자만 봐도 가슴이 뛰는 운명 같은 소명이나 어떤 직업을 갖겠다는 확고한 다짐만이 꿈은 아닙니다.

아직 내 길이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봄옷으로 갈아입은 대학교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낭만, 머릿속을 비우고 걷는 산책길, 시험이 끝난 다음 날 알람 소리 없이 늦잠을 자는 평온한 일상, 이전에 소개했던 소소한 버킷리스트까지도 모두 지금 우리를 버티게 하는 소중한 꿈입니다.

 

 

 

 

 

 

 

 

더욱이 분명한 사실은, 그 크고 작은 소망들을 품은 채 흔들리면서도 책상 앞을 떠나지 않았던 지난 시간의 밀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불안을 견디며 묵묵히 페이지를 넘겼던 그날들은 시험 날의 운이나 결과와 무관하게, 이미 여러분 안에 단단한 굳은살로 자리 잡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하고 또 수정해 나가든, 이 계절을 완주해 낸 힘은 여러분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랫동안 눈앞의 과제라는 벽에 이마를 바짝 대고 서 있으면 세상이 온통 한 가지 빛으로만 보입니다.

딱 한 걸음만 물러서서 벽 너머의 풍경을 떠올려 보면, 우리가 그리던 꿈은 그 벽 너머에 있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누운 자리에서 불쑥 불안감이 찾아올 때면, 시험이 끝난 뒤 내가 맞이하고 싶은 다음 장면을 머릿속에 가만히 그려보세요.

 

 

이제 곧 긴 터널을 빠져나올 여러분에게 미리 묻습니다.

그대의 꿈은 무엇인가요?

 

 

 

 

  • 권기범
멘토

고려대

권기범 멘토

  • 🏆 제22기 목표달성 장학생
  • 🙆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26학번
  • 📖 정시 전형
  • #독학재수 #평균백분위 상승(82->96) #경제물리러 #페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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