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10일 전,
수능을 앞둔 작년의 저와 같은 여러분들께 말을 올리고자 하니
저도 수능에 입은 상처들이 다 씻겨지지 않은 건지,
괜히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아 울컥해지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멘탈 케어, 힐링은 없지만 저에게 그나마 힘이 되었던
생각들과 방법들을 공유해드리려고 합니다.
1.
무의식의 나와의 화해
많아 봐야 20대 중 후반, 짧은 시간을 경험한 우리는 스스로의 의식적인 자아와
무의식적인 자아가 분열하여 크게 갈라서는 경험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가장 극렬히 자아가 갈라져 다투는
시기가 지금 이 시기일 가능성이 클 것 같아요. 적어도 저는 수능이 가까워질 수록 내 몸이, 내 무의식이 내 맘대로 되지 않고 말썽을 부려 화가 나고, 점점
더 불안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불안함’은 무의식 속의 나와 의식적인 내가 다투고 있는 과정이래요. 저도
수험기간에 무의식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평소에는 잘 이해가 안 가요. 이 시기가 돼서 그 말을
다시 들으면 이해가 되더라구요.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를 탓하는 행위는 독 이에요. 둘이 힘을 합치지는 못할 망정 의식이 ‘무의식의 나’를 공격하는 행위이기 때문이에요.
다른
방법들이 더 있을 수 있겠으나 저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어요. 첫 번째는 먹고 있던 영양제들을 끊었어요. 당시 저는 임팩타민 등의 영양제와 각성제, 공진당을 먹고 있었는데
이러한 각성제들을 많이 복용하여 불안감이 커지는 가능성이 있었죠. 그래서 모든 각성제를 끊고, 우환 청심환등 안정제만 조금씩 불안할 때 먹었어요.
두 번째는 심리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수능 날 아침에 차에서 읽을 ‘무의식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썼어요. 한창 가장 불안한 시기에 그냥 백지 한 장 마련해서 화해를 청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너도 지치고 겁이 나는 줄 모르고 몰아붙여서 미안하다,
그동안 아무 말없이 너가 잘 따라와 주었기에 소중함을 잊고 너에게 스트레스를 쏟아내서 미안하다,
천천히 너와 발을 맞출테니, 나를 용서하고 이전처럼 함께 문제를 풀며
나아가자.
등의 ‘너’로 표현되었지만,
‘나’에게 하는 말들을 적었습니다.
무의식의 나는 정말이지 의식의 나와 달리 착해서, 글을 쓰자 마자
사르르 풀리더라구요. 수능 날 아침에 읽어보며 긴장을 다시 늦추고 합일을 이루는데 좋았습니다.
2.
끝나는 건 없다.
불안함과는 또
다르게, 붕 뜨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시기는 정말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마주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수능 직전 붕 뜨는 것은 ‘아 끝이다’ 라며 1년
간의 추억에 빠지고 감상에 젖는 것입니다. 완강도 많아지고 Farewell
도 많이 올라오니, 분위기 자체는 어쩔 수 없긴 합니다.
하지만, 안 끝났어요.
아니, 시작도 안했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1점도 획득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리의 고생길은 이제 끝난 걸까요
언제 끝나는 것일까요
수능이 끝나는 순간?
아닙니다.
수능의 긴 여정을 생각하면 당연히 붕 뜨는 감정이 들기 마련이죠. 자연스럽습니다. 괜찮아요.
하지만 수능이 끝나도 할 일들은 끝나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끝나게 되면 정시 원서 공부에, 원서 접수에, 대학교 준비에, 대학교 가서도, 졸업해서도
할 일은 항상 많고 고생길은 이어져 있어요.
지금보다 조금 편해질 순 있겠죠. 하지만 죽어서 천국에 가는 개념은
절대 아닙니다. 임종 직전과도 같은, 삶을 돌아보는 마음가짐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요.
힘들긴 하지만, 열심히 사는 거 나쁘지는 않지 않습니까
저는 그 땀과 보람이 숙명이라 생각하고 수능 날 또한 과정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모의고사 보실때도 끝이라는 붕 뜬 마음을 가지고 치진 않았잖아요, 그처럼
과정으로 대하며 수능도 치고 넘어가시면 됩니다.
3.
우리는 서열 속에 있지 않다.
가장 방해되는 생각 중 하나는, ‘노력한 만큼 나와야 할 텐데..’ 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것은 가장 많이 하는 생각 중 하나입니다.
노력한 만큼 나오도록… 같은 말들은 사실 수능 공부를 하는 중간 과정에서
더욱 열심히 하라고 하는 자기 최면입니다.
수능은 그 동안의 공로를 축적하여 조물주가 등수를 매겨주는 보상형 게임이 아닙니다.
그 자기 최면에 불안감이 더해지게 되면, ‘나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만큼 나와야 할텐데…’ 나 ‘나 올해 너무 안한 것 같은데… 나만 망하려나..?’ 같은 생각이 들 수 있어요.
팩트는, 열심히 했던 사람보다 열심히 안 한 사람이 더 잘 볼 수도
있고 그것은 크게 상관 없는 것 입니다. (제 경험상)
신경쓸 것은 이거에요.
‘그 동안’이 아닌 ‘지금’,
나 수학 3점들은 다 풀 수 있지?
Ok
이런 유형 나오면 이렇게 풀 수 있지? Ok
6모에 이 개념 또 나오면 맞추지?
Ok
오답노트에 이거 다신 실수 안 할거지? Ok
할 수 있는 것에서 자신감을 찾으세요.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 풀 수
있는 문제를 잃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동안의 노력을 돌아볼 필요도, 만족/불만족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들과의 서열 속에 있지 않습니다.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무의식의 나와 의식의 내가 합일을 이뤄, 평소대로 풀어가는 것” 입니다.
‘나’에게 신경을 쏟고, 교감을 해주시고, 고생의 과정인 듯 계획대로 가볍게 지나가 주세요.
그래도 수능은 무섭지만, 저는 이런 것들이 조금씩들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구요, 지금도 수고하시죠. 늘 응원합니다 ㅎㅎ 또 올게요.
고려대
반민찬 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