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선생님들께 수능을 앞두고 보내는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사이의 즐거운 편지, 18기 목표달성 장학생 이강입니다.
지난 번 편지 보내드릴 때는 그래도 한 달 정도라는 기간이 남아있었는데, 어느덧 '수능까지 1보' 남았네요. 지금이 제일 고민이 많이 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밤이 늦었고, 불빛 하나에 의지해서 어떤 과목의 요점 정리를 보고 계실 테니까요. 오늘은 가볍게 제 수능 전날과 수능 날 이야기를 소설처럼 해 보고자 합니다. 저도 그런 고민과 '피마름'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오늘과 내일을 선생님들이 잘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0. 2021년 11월 17일
일 년 전 11월 셋째 수요일, 저는 수험표를 받으러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에 가기 전, 점심을 먹다가 소화불량이 온 채로 말이지요. 지금까지 잘 관리해 오다가 막상 시험 전날 그런 상황이 일어나니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학교로 가서 저희 때부터 바뀌는 수능 관련 참고사항을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수능 수험표를 보았는데,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수험번호가 9번이더군요. 언제나 '9번'이었던 저에게 행운이 온 느낌이었습니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기숙사로 갔습니다. 기숙사는 평소보다 이르게 취침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까지는 자습 시간이었지요. 자습을 하려고 앉았습니다. 이른바 '예열 지문'이라고 하는 국어 지문들을 살펴보려고 했는데, 머리에서 계속 글자들이 튕겼습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설상가상으로, 히터를 틀기 위해 의자로 올라갔다가 허리까지 삔 저는, 다음 날 수능을 제 컨디션으로 볼 수 있을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어 지문들을 일단 간단하게 살펴본 이후, 언제나 그랬듯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학 1과 수학 2에서 어려웠던 부분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 후 취침 시간이 되었고, 저는 다음 날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섞인 마음을 가지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1. 2021년 11월 18일, 이른 오전
기상 음악이 나와 눈을 떴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잠시 선생님들의 응원을 받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올라서 가방을 열었는데, 필통이 감각되지 않았습니다. 필통에 수험표를 넣어놓은 저는 그대로 '멘탈붕괴'를 겪은 것이지요. 막 출발하려던 버스에서 내려 지금까지 달린 것 중 제일 빠르게 기숙사의 제 서랍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엄청난 낭패감과 함께 다시 버스로 달려오니, 선생님께서 가방 안에서 필통을 찾았다고 하시더군요. 숨이 차긴 했지만, 그래도 필통이 있는 것을 보니 다행이었습니다. 수능날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하늘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컴컴했습니다. 새벽 공기의 차가움과 아직은 어두운 주변 풍경 사이로 버스는 달렸습니다. 가는 길에 역을 지나는데, 경찰차가 있더군요. 저는 앞자리에 계신 선생님들과 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 오늘 혹시 늦는 사람들을 위해서 저렇게 경찰차가 있는 건가요?' 선생님은 그렇다고 하시며, 지금도 기억나는 한 마디 말씀을 저에게 하셨습니다. '그럼, 당연하지. 오늘은 너희 고3들이 주인공인 날인데.' 그렇게 주인공 30여명을 실은 버스는 근처 수험장으로 쓰이는 고등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각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시간. 저는 19반을 찾아 9번 자리에 앉았습니다. 두 줄 앞자리에 많이 본 얼굴이 있었습니다. 저랑 이야기를 자주 했던 우리 학교의 다른 반 학생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저랑 같은 고사실이 되어서 신기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친구들과는 떨어지게 되어 나 혼자 이 험난한 날에 묵묵히 싸움을 이어나가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같은 학교 친구를 만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렇게 하늘은 점점 붉어졌고, 시계의 분침도 한 바퀴 정도 돌고도 아마 더 돌았을 겁니다. 이제 전국의 고3이 주인공이 되는, 2021년 11월 18일의 피말리는 하루가 시작된 것입니다.
2. 2021년 11월 18일, 오전 8시 40분 - 오전 10시 30분
첫 시간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국어입니다. 각 과목을 푼 과정까지 상세히 말하면 분량이 길어지니 그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시험지를 처음 받은 순간, 느껴지는 그 압박감. 모의고사에서는 언제나 국어 시험지를 받을 때, 이번 시험은 잘 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그날은 앞에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지'라고 쓰여있는 그 뭉치를 보며 저는 평소와는 다른 중압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수능최저기준도 맞추어야 했지만, 그것을 넘어 내가 12년 동안 배운 것이 어떻게 평가받나 궁금한 면도 있었기 때문에 수능에 거는 기대는 약간 있었습니다. 헤겔과 환율을 보며, 저는 수능완성의 지문들을 떠올렸습니다. 정확한 내용이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아, 이거 연계네.'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80분을 쓴 후, 저는 시험장을 나왔습니다.
의외로 난이도를 말하는 학생이 없었습니다. 다른 반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도리적으로' 서로 어떻게 봤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던 같은 학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예상하지 못한 문학 지문들이 나와서 당황했다고 하더군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학을 풀다가 독서를 풀 수 없는 것 아닌가, 사회 지문을 풀다가 기술 지문을 풀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두 고민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아주아주 어려운 시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수학을 한 등급 올려야겠구나.' 생각하며 저는 다시 반으로 돌아왔습니다.
3. 2021년 11월 18일, 오전 10시 30분 - 오후 12시 10분
두 번째 시간은 수학입니다. 수학 시험지를 받는 순간까지는 아마 비슷한 압박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제일 어려운 수학, 오늘은 한 번 씨름해보겠다는 생각으로 100분을 보냈습니다. 정확하게 어떻게 이 부분을 작성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다른 과목과 다르게 특기할 만한 사항이 없으니까요. 14번을 풀 때, 한 가지 반례를 우연히 찾았고, 21번 문제를 풀 때에도 규칙이 생각보다 금방 발견되어 운 좋게 풀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수학 문제에서 제가 많이 드릴 말씀은 없는 것 같습니다.
4. 2021년 11월 18일, 오전 12시 10분 - 오후 1시
점심 시간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싸 주어서 그것을 먹었습니다. 저는 감수성이 풍부한 학생이니 도시락을 먹으며 엄마 얼굴이라도 생각해 보아야겠으나, 감정이 메말라버린 수능 시험장에서는 슬프게도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소식하는 스타일인 저는 그 평소보다도 적게 먹었습니다. 반찬 하나가 맛있어서 그것을 다 먹어버린 것을 빼고는 나머지는 건드린 정도에 그쳤었던 것 같네요. 양치하러 가는 길, 같은 반에 배정된 친구가 시험은 잘 보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은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며 농담을 던졌습니다.
다른 층에 있는 고등학교 때 정말 친했던 친구를 만나러 갔다 오니 영어 시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남은 시간, 파이널 자료를 살펴보며 앞으로의 시험은 참가에 의의를 두자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는 그 전 시험 결과를 과소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날까지는 '이번 수능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슬프지만 1년을 더 해야겠지?'라는 생각을 쉽게 하고 있었는데, 막상 점심을 먹다가 소화가 잘 안 되는 막중함을 느끼다 보니 결과에 상관없이 다시는 이 시험장에 발을 들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수능은 아무나 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계기가 된 순간입니다.
5. 2021년 11월 18일, 오후 1시 10분 - 오후 2시 20분
영어 시험 시간 듣기 평가를 듣던 중에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 11번 문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밖에서 경운기일지, 오토바이일지 모를 소음을 가진 교통수단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니, 오늘 같은 날은 비행기 뜨는 것도 막는 날인데, 저런 소리가 나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독해는 무난하게 풀었고, 9월 모의고사 때 느긋하게 풀다가 타임어택을 당한 적이 있어서 수능 때만큼은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려고 하였습니다. 내가 경운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던 문제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이미 지난 문제이니 어떻게 하겠느냐는 생각으로 했다고 사후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냥 앞에 문제가 있으니 계속 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내일 시험을 보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기는 합니다.
6. 2021년 11월 18일, 오후 2시 50분 - 오후 4시 37분(오후 5시 45분까지)
사이의 시간에는 세계사 연표를 다시 외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정법 요약 정리집을 보아야겠다고 계획했는데, 세계사 연표를 보니 감독관 선생님들께서 들어와 계셨습니다. 위에도 말씀드렸지만, 약간 마음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게 시험에 임했습니다. 한국사, 세계사를 풀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세계사에서 헷갈리는 선지가 조금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아, 나는 어려운데 오늘 끝나고 인터넷 들어가면 쉽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겠네?'라고 생각하며 시험을 보았습니다. (다음 날, 그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지요.)
그리고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정치와 법을 보았을 때입니다. 내일 선생님들께서 절대 하지 마셔야 할 것은 시간을 헷갈리는 것입니다. 저는 시험이 한 20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몇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10분 종이 울렸습니다. 정말 당황스러웠지만 생각보다 적응이 빨라서 그냥 나머지 문제를 조금 빨리 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한 문제가 답 선지가 두 개 사이에서 헷갈리는 선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없이 선지 하나를 골랐다가, 마킹 전에 검토하다 보니 한 문제가 충돌하더군요. 입양과 친자 문제였는데, 아마 양자의 권리를 묻는 문제였을 겁니다. 시험이 끝나기 2분 정도 전에 저는 답을 골랐고, 그렇게 내면서 제 수능최저에서 풀어야 하는 과목은 모두 풀었습니다. 시험장을 나오며 '에잇. 저 한 문제 때문에 등급 갈리겠구나. 어쩔 수 없지.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한 답을 내밀었고, 이제는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닌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일단 그 문제는 맞았고, 만일 그 문제를 틀렸다면 등급이 한 등급 내려갔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만일 그랬다면 수능최저를 저 한 문제 때문에 못 맞추게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제 학생들이 제2외국어를 보지 않는 학생들, 그리고 제2외국어를 보려고 했으나 포기할 학생들이 나가고, 반에는 11명만이 남았습니다. 저는 그 나머지 열한 명 사이에서 한문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40분이 흘러가고, 저는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답변들로 가득찬 답안지와 시험지를 낸 채 모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7. 2021년 11월 18일, 늦은 저녁
아마 그러고도 6시 조금 넘는 시간까지는 학교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오면서 친구와 시험을 잘 보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그 친구는 잘 본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어려웠던 것도 쉬웠다고 말했지요. (흥미로웠던 것은 제가 쉬웠다고 생각한 것은 그 친구가 어렵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오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오묘한 그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 학교는 교문 바로 밖에서 차가 지나가는 구조였는데,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켜져있고, 하늘은 깜깜하고... 깜깜할 때 들어갔는데 깜깜할 때 나온 셈입니다. 그렇게 하루가 갔구나. 하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보낸 날이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그날은 제가 주인공이었으니까요. 집으로 오는 길, 가족들에게 모두 전화를 돌렸습니다. 수험생을 배려하는 마음에서인지 수능의 난이도 등을 물어보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잘 보았는지도 안 물어보셨습니다. 그렇게 저의 18년 인생 첫 분기점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8. 2022년 11월 16일, 늦은 밤. 22시 30분경.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 저는 선생님들께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그 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 그 하루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일 하루는 생각보다 빨리 갈 것입니다. 해가 떴다고 생각하면 시험에 집중해야 하고, 나와보면 어느덧 해가 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 주셔요. 그날의 해가 지는 순간이, 선생님들의 해가 떠오르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하나만 떠올려 주셔요. 제가 일 년 전 그 날, 듣고 굉장히 벅찼던 말씀. 그리고 이제는 제가 다른 선생님들께 드릴 수 있는 그 말씀. 내일 하루만큼은, 2022년 11월 17일만큼은, 2023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선생님들이 주인공이 되는 날입니다. 자, 그럼 내일의 주인공 되시는 분들, 힘차게 수능장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정말로 주인공, 내일만의 주인공이 아니라, 미래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9. 감사 인사
다른 멘토님들 칼럼을 보니 작별 인사를 꽤 하시더군요. 저는 이후에도 대학 생활 전에 해야 할 일이나 도서 추천 등을 칼럼 계획으로 잡고 있습니다. 수능 이후에도 저와 함께 해 주실 선생님들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하지만서도, 혹시 수능 이후 칼럼을 덜 보실 선생님들을 위해서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의 편지 횟수로는 8번을 선생님들께 보내며, 마음 속에만 간직하던 제가 생각하는 공부, 제가 생각하는 멘탈 같은 것들을 서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리고자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 한 마디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선생님들은 인간이고, 진짜 공부를 하실 수 있으며, 그 모든 것을 통합하여 반드시 언젠가는 '주인공'이 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막상 마지막 인사를 하려니까 어색하고 무슨 말씀을 드릴지 모르겠네요. 그 동안 서툴고, 실용적이지 않고, 표현도 잘하지 못하는 저의 이야기, 저의 편지를 받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럼, '주인공'들이 지나가다 만나든, 다음 즐거운 편지를 받아보시든, 언젠가 반드시 만나뵐 수 있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일단, 저는
다음 달에도 즐거운, 유익한 내용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여덟 번째 즐거운 편지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11월 16일.
진심을 담아,
이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