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멘토 김동은입니다. 몇 달 전 캠퍼스 내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한 사람과 나눴던 대화와, 이후 하게 된 생각들을 수험생 여러분들과 공유해보고 싶어 노트북을 켰습니다.
하늘이 유난히 맑았던 어느 날, 저는 할 일을 하기 위해 기숙사를 빠져나와 캠퍼스 내에 있는 한 카페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초행길이라 그런지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고 있는 와중, 60~7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OO 카페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시더군요. 평소에도 저에게 길을 묻는 사람이 많아 익숙하게 알려드리고 싶었으나, 저도 잘 몰랐기에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때마침 저도 같은 곳을 찾고 있던 터라 우연히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80년도에 졸업하시고, 현재는 모 기업의 사장으로 계신 분이셨습니다. 여유로운 주말에 모처럼 모교 캠퍼스로 산책을 나오셨던 것이었습니다. 새롭게 들어선 건물들, 많이 바뀐 교정에 놀라움을 표하시더라고요.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카페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재밌는 대화에 어쩌다 보니 테이블에 합석하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인생 얘기, 고민거리 등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더라고요. 그분께서 들려주신 인생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삶을 사셨을까 싶다가도, 정말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저씨께서는 요즘 세상에 서로 경계심이 많아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과 오랜 시간 깊게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 특별한 경험을 하셨다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힘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씀하시며 명함 한 장을 건내시고는 쿨하게 뒤돌아 가셨습니다.
아저씨와 헤어진 후, 저는 한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대학’이라는 좁은 관문 뒤에 펼쳐진 광활한 세상을 너무 간과한 채로 살아오진 않았는지, 앞으로 어떤 태도로 어떤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죠. 정말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오더라고요.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대학에 들어와서 꿈꾸던 전공을 공부하게 되었지만,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공허함과 막연함은 저를 방황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대학 생활 이후 앞으로 몇십 년 동안 각자 갈 길을 찾아 묵묵히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니까요.
저에겐 모든 것을 걸고 온 노력을 쏟아부을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제게 ‘멘토’라는 위치는 너무 과분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들께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을 갖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치열했던 입시의 경험은 인생에 있어 성숙해질 수 있는 하나의 큰 자산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요. 입시는 장애물을 맞닥뜨렸을 때 내가 어떻게 대처하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좌절감으로 인해 침전하는 느낌이 들 때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 등등 자신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기회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끝은 있지만 잘 보이지는 않는 불확실한 매일의 반복 속에서 불안감에 떨고 계시겠지요. 불과 몇 달 전의 저 역시 그랬습니다. 목표를 향해 뒤돌아볼 새도 없이 달리다가도, ‘이번에도 안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나 평생 노력만 하다가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곤 했어요.
하지만 모든 노력에 보상이 반드시 따르지는 않는다는 불확실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끝에 무엇인가를 이루어낸 경험이 주는 교훈은, 비록 그 크기가 작더라도, 쌓이고 쌓여 인생의 결정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서울대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의 저는, 공부가 됐든 다른 분야가 됐든 간에 재능 있고 뛰어난 친구들 사이에서 한없이 작아지기만 했었습니다. 뭐든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이렇다 할 특출난 재능도 없었고, 공부도 애매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얻었던 교훈들을 토대로, 결국 ‘노력’을 저의 재능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어딜 가서 자신 있게 내놓을 만한 거대한 업적은 없지만, 학업이나 교외 활동,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에서 자잘한 성취감을 맛보며 또 다른 무기를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대학에 와서도, 더 나아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더라도, 어딜 가나 끝없는 경쟁의 연속입니다. 인생의 단계를 하나하나 격파해나가는 과정에서, 여러분들이 좌절과 혐오, 비교와 나태의 달콤함에 길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살아온 인생도 여러분들과 같이 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제가 드리는 이런 말씀이 다소 분수에 지나쳐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목달장 하는데, 내가 못 이룰 게 뭐가 있어’라는 생각으로, 여러분들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의 기회가 되었길 바랍니다.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게 되길 바랍니다.''
허준이 교수, 2022 서울대 학위수여식 축사 中
서울대
김동은 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