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갑자기 인사드리게 된 유진목달장입니다.
제가 어젯 밤 자기 전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봤는데...
사실 제가 요새 과외를 몇 개 하거든요
근데 과외준비를 할라면 일단 문제를 풀어야 하잖아요? 개념도 대충 다시 봐야되고? 어려운 문제는 확실한 풀이법도 알아가야하고?
아니 공부가 드럽게 하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써봤습니다.
작년의 고3 유진목이 공부하기 싫을 때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살짝의 마음가짐이랄까
-
1. 고등학교 땐 시가 그렇게 재밌었는데 말이죠.
'
I.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
-즐거운 편지 中
전 황동규 시인의 이 시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모의고사에서 발견한 이 작품에 푹 빠져,
매일같이 되뇌어보고, 따라 적어보곤 했습니다.
(황동규 시인이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의 아들인 건 아시나요.)
그냥 막 외롭고 그렇잖아요
곁엔 친구들이 있지만 얘네들이 애인도 아니고 ㅋㅋ
그럴 때 나름 이런 사랑시가 마음 진정에 도움이 되었는지안되었는진잘모르겟고요..(어쩌면 외로움 증폭장치였을지도), 그냥 재밌었어요. 그 전 해 수능특강에 있던 [배를 매며]나, 올해 수능특강에 있는 [낙화, 첫사랑]과 같은 작품처럼 뭔가 사랑에 관련된 것 같은 느낌이 조금이라도 드는 시들은 적어도 3번씩은 읽고 한 문장씩 베꼈습니다. 달달한 소설을 읽는 것도 좋지만 수험생이라는 신분 상 시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 소설에 비해 시는 짧아서 여운도 그리 오래 안 남거든요. 그 잠깐의 달콤함과 밀려오는 현타를 금방 극복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답니다. 좋죠? 네좋아요
또 믿거나 말거나긴 하지만 한번 시에 빠지고 나면 국어 공부(시험X, 순수 국어 공부)에도 나름 도움이 된단 말입니다...
앞서 제가 좋아했다고 말한 황동규 시인의 다른 작품으론 [풍장]이 있습니다.
'
내 세상 뜨면 풍장(風葬)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 우고 옷 벗기 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 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
모의고사에서 한 번쯤은 보셨을 법한.. 시체를 택시에 실어 처리해달라는(의미는 아니지만) 그런 시입니다. 이 시를 처음 읽고는 '왜 시체유기를 해달라고 하지...'라는 생각을 했었죠
아무튼.
황동규 시인의 첫인상은 '사랑'이었는데, 알고 보니 즐거운 편지와 함께 대표작으로 꼽히는 [풍장]은 '죽음'에 관한 시였다는 점에서 흥미가 돋았습니다. 이때부터 새로운 작가가 나올 때마다 나*위키를 읽어버리는 바람에 각종 소설가들의 tmi만 뇌에 쌓였다는 슬픈 사실이... 보통 작가들은 같은 느낌의 작품을 많이 내고, 또 우리가 보는 작품들도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그렇게 배우기도 하고. 이육사는 일제에 저항하고 윤동주는 자신을 반성하는. 그런 스테레오타입이 박혀서 한 작가는 비슷한 느낌의 시만 쓴다고 무의식에 넣어버렸던 걸까요.
이렇게 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게 되니 예전에 공부했던 작품들도, 새롭게 배우게 될 작품들도 '어? 이 작가가 이런 작품도 썼었구나' 하면서 더 재밌게 볼 수 있었어요. 뉴진스가 신곡을 내면 우르르 몰려가 찾아 듣듯이 모의고사에서 아는 시인이 나오면 신나서 '와 이번엔 어떤 새로운 주제로 날 놀라게 할까'하면서 기쁘게 읽어보는 그런느낌? 뭐 알아서 받아들이시고
또, 시가 너무 재밌어서 혼자서 끄적끄적 몇 개 써보기도 했었어요.
자습시간에 딴짓하다가 걸려서 화가 날 때.
파릇한 여름 날 창문을 보며 자울자울 졸 때.
밤에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안 올 때.
떠내려가는 순간의 감정들을 최대한 붙잡고 써보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를 써보니까 어렵더라고요.
어떻게 써도 초등학생같은 느낌이 지워지지가 않고,
시의 핵심은 함축인데 뜻이 제대로 숨어들어갔는지도 모르겠고...
여기선 어떤 표현법을 써야 할까? 라는 고민도 해보고,
국어시간에 배운 은유 직유 활유 대유 온갖 방법도 다 써보며 고민해보며 시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오른 듯한 느낌도 들었던 때였습니다.
이렇게 직접 글을 써본 후에 모의고사를 보면 그때부턴 느낌이 또 달라지덥니다.
지문을 문제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문학 대선배의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면
'와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어요.
이가림의 [석류]를 보면서 어떻게 사랑을 저렇게 표현할 수가 있지
왕구슬의 [손톱깎이]를 보며 어떻게 자라나는 마음을 저렇게 표현할 수가 있지
(사실 이 손톱깎이라는 시는 좀 많이 유명합니다...
'
누군가 내게
'당신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외면하며
'손톱만큼요'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서는
잘라내도 잘라내도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내 손톱을 보고
마음이 저려
펑펑 울지도 모른다
'
아끼던 시였는데 밈으로 변해버려서.. 좀 아쉬을 따름입니다)
그렇게 감탄하면서 한 수 배워가고, 그걸 바탕으로 또 써보고.
문학적 소양이 조금씩 조금씩 커져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이런 활동들이 문제풀이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입시공부에 지치고 질려 문학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수험생들이 안타까워 아닌 밤중에 짧게 써봤습니다. 문학을 그렇게 많이 접하기로 고등학생만한 시간이 없는데.. 다 한 번 읽고 버려버리잖아요.
여전히 고등학생 때와 다름없이 글을 못 쓰는군요
문학이 정말 재밌는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암튼 우리 문학이 많이 사랑해주세요
(다음 편도 나올 예정입니다. 아마 8월 안짝으로? 노력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