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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너머를 듣는다는것

이름 : 박수영  스크랩
등록일 :
2025-05-21 11:43:58
|
조회 :
19,141

초등학생 시절,

나에게는 친구 (이하 A)가 한 명 있었다.

A는 겉보기에도 남들과는 좀 달랐다.

항상 귀에 무언가 기계장치같은 것을 달고 다니던 친구였다.

A는 그걸 '인공와우' 라고 말했다.

어렸던 나는 뭔지는 잘 몰랐지만, 그냥 귀가 좀 안 들리는구나 하고 대강 짐작했었다.

 

A는 정말 성실한 사람이었다.

항상 학교에서 보면 가만히 앉아서 공부를 했고,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는,

선생님들이 좋아할 만한, 그런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나는 그 친구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기 때문에, 자주 등하교를 같이 하곤 했다.

A의 장애는 나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성격상, 인공와우를 달고 있던 A는 나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나는 그 친구와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A는 참 의젓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곤 했다.

가끔씩은 같은 나이대의 친구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A가 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날, 학교로 카메라 여러 대가 찾아왔다.

<영재발굴단> 이라는 TV 프로그램의 제작진이라고 했다.

어디서 이 친구의 소문을 듣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학교가 며칠 간 상당히 소란스러워졌다.

방송국의 커다란 TV 카메라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호기심을 사기에 충분했고,

촬영기간 동안 선생님들은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 전교생을 제지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으셨다.

한 친구는 카메라 앞에서 평소 A가 어떤 학생이었는지에 대해 신나게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면서, 내 마음속 한 켠에서는 A를 향한 나의 부러움과 열등감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A의 이야기가 TV에 나왔다.

주위 친구들은 각자 자기들이 나왔나 안 나왔나를 찾기에 바빴고,

학교 선생님들도 자기네 학교가 TV에 나왔다는 소식에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TV속 A의 모습은 평소 그대로였다.

물론 TV 프로그램이라는 게 연출이 없을 수는 없는지라, 약간은 작위적인 모습이 보이긴 했다만,

누구보다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평소대로의 모습은 연출로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모습을 보면서 패널들은 입을 모아 A를 칭찬했다.

 

같은 시각, 핸드폰 DMB 화면 너머로 나오는 A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무심코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부럽다...'

 

'나도... 나도 누군가한테 저렇게 인정받고 싶다...'

 

 

 

시간은 흘러 2024년 여름,

첫 번째 수능을 깔끔하게 망친 나는, 여느 때처럼 대치 러셀에서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어느 때와 똑같이 기하 해설강의를 듣기 위해 ebsi로 들어가서 메인 화면을 클릭한 순간,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 이 녀석은...?!'

 

내가 아는 그 이름, 그 얼굴이었다.

그랬다. 이건 A가 분명했다.

A의 모습이 내 태블릿에 뜨고 있었다.

그것도 ebsi 꿈장학생으로, 너무나도 당당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홀린 듯 A의 수기를 클릭해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A는 수시로 연세대학교를 합격했다. 아주 당당하게 말이다.

초중고 시절 한국어 구어와 영어를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느라

사교육과 선행학습에 투자할 시간도 없다시피한 A였지만,

보란 듯이 현역으로 연세대학교 생화학과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A는 귀가 좋지 못해 사설 인강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 대신 오로지 ebsi만을 이용해 공부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인강에 자막이 제공되는 곳은 ebsi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세대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사교육의 컨설팅이나 도움은 일체 받지 않았다고 한다.

 

순간 엄청난 현타가 몰려왔다.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인생을 살아왔지만,

A는 그 시간동안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교육에 점철된 채 고등학교 3년을 보낸 것으로도 모자라서,

고작 대학 이름표 하나 바꿔 달겠다고,

이제는 사교육의 중심지인 대치동 한복판에서 일 년을 더 버티고 있던 나에게

A의 합격 수기는 더할 나위 없는 충격이었다.

 

말도 안 되게 불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A가 그렇게 열심히 인생을 살아오던 동안,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오던

그 지나간 시간동안

 

나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차마 A의 사진을 똑바로 마주하기가 두려워졌다.

 

나는 과연, A를 부러워할 최소한의 자격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그날부터 나의 마음가짐은 조금 달라졌다.

물론 만화처럼 하루에 20시간씩 공부하고 의지를 불태우고 이런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A를 떳떳하게 다시 마주할 수 있는 내가 되기로 다짐했다.

 

단순히 대학 급간이나 성적의 문제가 아니라,

녀석이 보여준 삶의 태도에 부끄럽지 않도록,

내가 A에게 가졌던 열등감이 그저 질투로 끝나지 않도록.


그렇게 다시 일 년의 시간이 흘렀다.

A는 2학년이 되어 송도에서 신촌으로 캠퍼스를 옮겼고,

나는 대치에서 관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ebs에서 장학금을 받았던 A처럼 이곳 메가스터디에서 장학생으로 선발이 되기까지 했다.


아직까지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A를 다시 마주한 적은 없다.

그래도 혹시나, A를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 누군가가 지금의 나는 그 친구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만큼은 확답을 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A에 비하면 너무나도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지난 일 년 동안은 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만한 삶을 살았다고.



<오늘의 추천곡>

Neutral Milk Hotel - Ghost

미국의 인디 밴드 뉴트럴 밀크 호텔의 2집 수록곡입니다.

따뜻한 로파이 질감과 <안네의 일기>에서 영감을 받은 서정적인 가사가 특징인 곡으로,

따뜻하지만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사운드때문에 좋아하는 곡입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쓸쓸한 서울, 노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1집 수록곡으로, 요새 정말 자주 듣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밤에 집 가는 지하철에서 들으면 가사 몰입감이 배가 됩니다.

생전 그분의 공연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Nujabes - The Final View

일본의 재즈 힙합 프로듀서 누자베스의 곡입니다.

제가 속한 동아리 '사운드림'의 정기 음감회에서 처음 알게 된 곡으로,

비트도 그렇고 사운드와 샘플링이 정말 아름다워서 선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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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필력이나마 나름 열심히 써봤으니 재밌게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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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영
멘토

서울대

박수영 멘토

  • ■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25학번
  • ■ 정시 전형
  • ■ 제 21기 목표달성 장학생
  • 재수 정시 SKY 3관왕! 기하에 진심인 박수영입니다. 여러분들의 한 해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신일고55기 #진격의기하러 #광기의_ENTP #의대버리고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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