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스터디

“울음을 들키고 싶은 마음아 내가 노래할 때, 함부로 여기 쏟아져 흔들리렴 윤슬처럼”

햇빛이 잔잔한 물결 위를 스칩니다. 파도도 바람도 없는 순간인데, 그 위에서만 윤슬이 번집니다. 마음이란 것도 어쩌면 그런 빛과 닮았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피할 수 없이 드러나는 것. 오래동안 눌러온 감정들이 어느새 표면으로 떠오르고, 숨기려던 마음조차 빛에 닿으면 결국 흔들리고 맙니다. 여러 빛깔의 나뭇잎을 스쳐온 이 입시의 계절의 끝자락, 우리 마음의 결도 그렇게 서서히 비쳐오고 있습니다.

하늘은 맑지만 공기는 차갑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마음은 유독 느려집니다. 수능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지금, 이 시기의 공기에는 묘한 투명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책상 위엔 익숙한 필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지만, 마음속의 생각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부유합니다. 불안과 기대, 긴장과 안도, 서로 다른 감정들이 한자리에 얽혀 빛을 만듭니다. 그 빛이 흔들릴 때마다, 진심이 그 안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도 그 마음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괜찮은 듯 하루를 버티던 날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공부를 이어가면서도 속으로는 끝없이 흔들리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불안과 떨림이 뒤섞인 마음이었지만, 그 감정의 이름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그 조용한 흔들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마음들 곁에 이 글을 놓아두려 합니다. 

아직 빛이 머무는 곳에, 수능 전 마지막 REPLAY 시작합니다.

빛은 여전히 물결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고요한 윤슬이 흔들리듯, 마음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괜찮은 척 웃고 있었지만, 그 아래에서는 작은 불안이 계속 파문을 그렸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했으니까 잘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불안해하던 친구를 오히려 위로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그들에게보다 제 자신에게 더 많이 건네던 위로였습니다. 괜찮다고 말할수록, 속에서는 자꾸만 의심이 일렁였습니다.

그 시기엔 국어가 특히 그랬습니다. 오랜 시간을 투자했는데도 6월, 9월 모의고사에서 결과는 늘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매번 성적표를 받아들 때면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들이 뒤섞였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걸까. 공부량은 쌓여 가는데 성취감은 줄어들었고, 내신 때처럼 성적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을 갉아먹었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문제를 풀다가 문득 멈춰 섰던 날도 많았습니다. 연필을 쥔 손끝에서 묘한 떨림이 올라왔고, 그 순간엔 늘 같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번에도 아닐지도 몰라.’ 그 불안은 점점 익숙해져, 마치 공기처럼 제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괜찮은 척을 했습니다. 불안을 감추기 위해, 더 밝게 웃고, 더 열심히 하는 척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진심이 단단해질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평온한 얼굴 아래에는 끝없이 흔들리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불안이 약함이 아니라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윤슬처럼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수능 전날 마지막 고웁를 하던 밤, 기숙사 연등실의 불빛이 하나 둘 줄어들 때까지 저는 혼자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제가 그동안 정리해놓은 내용을 복습하고, 펜을 내려놓으면서 두 개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스쳐갔습니다. ‘기회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자.’ ‘어제보다 조금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자.’ 그 두 문장은 누군가가 시킨 다짐이 아닌, 지난 시간동안 제가 하나는 마음 속에, 하나는 하루의 공부를 시작하며 플래너에 적어가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건넸던 약속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 문장을 품은채 결전의 날까지 학교에서 가장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자라는 입학 했을 때의 다짐을 지켜냈고, 그렇게 스스로의 하루, 그리고 지난 3년의 시간을 인정하면서 침대에 누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익숙한 사감 선생님의 기상 방송이 들려왔습니다. 언제나 듣던 목소리였지만, 그날따라 조금은 다르게 들렸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오늘’을 실감했고, 불암과 기대가 한데 섞인 감정이 천천히 온몸을 감쌌지만, 그 안에는 이상한 평온이 있었습니다. 밤새 곱씹었던 다짐이 마음 한 가운데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도 마음은 잔잔했지만 단단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1교시 국어영역을 위해 그동안 만들어온 행동강령들이 차례로 지나갔습니다. 매일 밥을 먹을 때, 씻을 때, 그리고 잠을 자기 직전까지 책상이 없더라도 모든 순간에 되내이던 그 다짐들이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마음속을 정리해주었습니다. 그 다짐은 ‘잘해야 한다’가 아니라 ‘끝까지 나답게 하자’라는 말에 가깝게 저를 이끌었고, 긴장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었지만, 더는 그 긴장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교실동에서 마지막으로 소지품을 확인한 후, 버스를 타러 이동을 할 때, 낯익은 함성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후배들이 양쪽으로 줄을 서서 교실동에서부터 버스까지 선배들을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수능을 응원하는 입장에서는 그 자리에 서 있는 선배들이 대단하다고는 느꼈지만, 그 마음에 완전히 공감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이젠 그 응원을 받으면서 걸어가는 사람이 되었음을, 후배들의 인사에 답을 하고 파이팅을 외치면서 길을 내려오며 체감했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 누군가의 눈빛으로 제가 이 학교에서 3년동안 보내온 시간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항상 누군가에게 응원의 말, 동기부여의 목소리를 건네왔던 제가, 이제 누군가에게 응원을 받으면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 사실이 낯선 벅참으로 다가왔습니다.

버스에 올라타자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왔습니다. 차창에 부딪히는 빛이 천천히 번지면서 윤슬처럼 흔들렸습니다. 그 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불안하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증거라는걸.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피해왔던 감정들을 이제는 숨기지 않아도 괜찮다는걸. 그날의 긴장은 실패의 징조가 아니라, 진심이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떨림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고사장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을 때, 손끝이 조금 떨렸습니다. 그러나 그 떨림이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떨림 속에서 지난 시간들이 모두 이어져 있음을 느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제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를, 그 떨림이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시험지를 기다리면서 그 마음을 숨기지 않기로 해습니다. 들키고 싶은 마음으로, 윤슬처럼 흔들리며, 진심을 모두 쏟아내기로 했습니다.

시험이 모두 끝난 뒤, 교실을 나서며 창밖을 보았습니다. 오후의 빛이 교정 위로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눈부시지 않은, 그러나 따뜻하게 번지는 빛이었습니다. 그 빛이 바닥에 쏟아지고, 지나가던 학생들의 그림자 위로 천천히 윤슬이 번졌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도 같은 빛이 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눌러왔던 감정들이, 이제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듯 잔잔히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더 이상 불안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이 비로소 세상에 닿은 뒤 남은 고요함이었습니다.

윤슬은 완벽히 고요한 물 위에서는 생기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렁일 때 비로소 빛은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음도 그와 같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흔들림이 있었기에 우리는 스스로의 진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불안했던 순간들, 끝없이 반복되던 하루들이 결국 빛을 비추기 위한 물결이었다는 것을.

수능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하나의 경계 같았습니다. 그 경계를 건너며 우리는 스스로를 들켜버렸습니다. 불안과 긴장, 그리고 노력과 믿음이 한꺼번에 드러났던 시간. 하지만 그 들킴 속에서 오히려 우리는 단단해졌습니다. 윤슬이 흔들림을 통해 빛을 얻듯,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빛을 배워갔습니다. 그날 이후로 마음속의 떨림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진심이란 결국, 숨길 수 없을 만큼 선명한 것이니까요.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제 마음속에는 한 곡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들키고 싶은 마음에게' 부르는 노래. 그 노래 속 ‘마음’은 어쩌면 지금의 여러분을 닮았습니다. 긴 여정을 걸어오며 불안과 기대,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고 있는 마음들, 겉으로는 담담하지만 속에서는 수없이 흔들려온 마음들. 저는 이 글을 통해 그 마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감추려 애쓰던 진심이 결국 드러나는 그 순간, 여러분의 마음이 윤슬처럼 빛나기를 바라면서요.

지금까지 제가 써온 REPLAY들은 모두 그런 마음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수성의 하루, 알루미늄, 꿈과 책과 힘과 벽. 그 글들은 각기 다른 날에 쓰였지만, 모두 한 곡의 노래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다시 부르고, 다시 되감으며, 다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저에게 REPLAY란 언제나 기억의 재생이 아니라, 마음을 비추는 또 다른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 속에서 글을 읽어주셨던 여러분의 마음은 물결이었습니다. 흔들리면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 진심의 결이 남은 마음. 그리고 그 위로 번지는 빛이 저의 REPLAY였습니다. 마음과 노래가 서로를 비추며 흔들릴 때, 비로소 윤슬이 생겼고, 그 윤슬은 우리가 함께 만든 빛이자 이 노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빛은 늘 일렁일 때 더 선명해집니다. 완벽히 고요한 마음 속에서는 윤슬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불안과 떨림이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흔들림이 저의 노래를 완성시켰고, 저의 노래는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울음을, 서로의 빛을 들켜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그 노래를 넘겨드리고 싶습니다. 곧 맞이할 무대 위에서, 여러분의 마음이 또 다른 REPLAY가 되어 울려 퍼지길 바랍니다. 오늘의 흔들림이 내일의 윤슬이 되고, 그 빛이 여러분의 진심을 증명해 주길 바랍니다. 불안도, 떨림도, 그 어느 것 하나 숨기지 말고 모두 쏟아내세요. 그것이 여러분이 걸어온 시간의 무늬이자, 지금 이 순간 가장 진실한 모습입니다.

모든 긴장이 끝난 자리에는 묘한 고요가 남습니다. 그러나 그 고요는 결코 공허하지 않습니다. 불안과 떨림, 그리고 끝까지 견뎌낸 마음이 남긴 잔열이 그 안에서 천천히 숨을 쉽니다. 수많은 감정들이 흩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압니다. 흔들렸던 시간들 속에 진심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 곧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틀 뒤면, 여러분은 그 모든 마음을 시험지 위에 쏟아낼 것입니다. 하지만 수능이 끝나면, 그때가 바로 여러분의 REPLAY가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그동안 만들어왔던 이야기들을 다시 앞으로 재생하는 시간, 세상에 들려줄 여러분만의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수많은 빛이 일렁이는 윤슬 위에서, 여러분의 하루가 노래가 되길 바랍니다. 떨리는 손끝마다 진심이 묻어나길 바랍니다. 이 글의 마지막은, 그렇게 무대 위에 설 여러분을 위한 한 줄의 노래로 남겨두겠습니다.

오늘 흔들린 마음이 내일의 빛이 되어, 다시 노래처럼 피어나길.

P.S 

안녕하세요. 목표 달성 장학생 21기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치의학과 유준헌입니다. 수능 전 마지막 인사가 지난 알루미늄 이후로 많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사실 지금 이 글이 업로드 될 시각이 2025년 11월 11일 1시 11분인데요, 사람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여러분이 응시하실 7개의 과목 모두에서 1등급을 받았으면 하는 소박한 부적의 의미로 7개의 1을 담고 있는 시간을 찾아 글을 아껴두고 있었습니다 ㅎㅎ

처음 REPLAY를 시작한 그 순간부터 수능 전 마지막 REPLAY까지, 평소에 글을 써본 적도 없고, 책을 많이 읽어본 적도 없어서 부족하기만 했을 저의 글을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능 이후에도 이어질 면접, 원서 접수, 그리고 합격의 순간까지의 여러분의 이야기, 그리고 이제 새롭게 수험생이 되어 자신만의 길을 밝혀나갈 어떤 이들의 이야기까지, 저의 목소리가 여러분에게 닿을 수 있는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들을 위해 함께 노래하는 목표 달성 장학생이 되겠습니다. 

이번 글이 애써 숨기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복잡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누군가에게 마음껏 울고 털어놓을 수 있는 노래로 남기를 바랍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여러분의 수많은 이야기들, 또는 수능을 마치고 이 글을 읽고 나서 시작될 여러분들의 REPLAY의 첫 음들, 자유롭게 이 글의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바쁘게 달려왔던 여러분들에게 그동안 저의 REPLAY가 잠시나마 휴식의 시간, 또는 사유의 시간으로 다가왔기를 바랍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나갔던 여러분들에게 11월 13일은 그동안의 수많은 어제들이 모인 탑이 될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높고 빛날 자신만의 탑 위에서 지금 느끼는 모든 감정들, 다해온 노력들을 '진심'이라는 제목으로 노래하며 춤을 춥시다. 저는 지금껏 꼭 쥐고있던 마이크를 잠시 내려두고, 여러분들의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의 자리로 발을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잘 하고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