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메가스터디 목표달성 장학생 21기,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치의학과 25학번 유준헌입니다.

입추는 다가오고 있지만, 더위는 아직 한참입니다. 여름방학도 절반을 훌쩍 넘긴 지금, 시간은 분명히 흘러가고 있는데, 계절은 좀처럼 쉽게 바뀌려 하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수능 D-100을 넘긴 지금, 고3 수험생 여러분은 실전처럼 하루를 살아내고 계시겠지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마음은 따라가지 못해 막막하고,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데에도 적지 않은 힘이 들 겁니다. N수생 여러분 역시 반복된 여름을 다시 지나며, 작년보다 더 단단한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버텨내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시간을 지나왔기에, 이 글이 하루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자신을 다잡는 계기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눈을 감기 전, 누군가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할 수 있어”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게 되는 그런 순간. 이 글이 여러분에게 그런 숨 고르기의 순간이 되기를 바라며, 다시 인사드립니다.

저는 지난 칼럼 ‘RELAY’에서 대학 입학 이후의 삶을 기록하며, 다음 칼럼에서는 다시 REPLAY의 자리로 돌아가 수시와 생활기록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약속을 지키는 글이자, REPLAY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수시 전형, 특히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제도 안에는 단순한 정보나 형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고, 저는 그 질문에 처음으로 답해보는 문서가 바로 ‘생활기록부’라고 생각합니다. 자소서가 폐지된 지금, 생기부는 학생의 말과 태도를 대변하는 거의 유일한 서사가 되었고, 단순한 항목의 나열이 아닌 ‘흐름과 맥락’ 속에서 자신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제가 경험을 통해 배운 생기부 작성의 핵심과 방향성을 나누고자 합니다. 실용적인 조언을 담되, 그 조언이 단순한 팁이 아닌 각자의 고민 위에 자연스럽게 놓일 수 있도록, 하나의 흐름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합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의 제목은 잔나비의 노래에서 빌려온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입니다. 노래 속에서 초록은 휘파람 부는 오월의 하늘과 젊은 날의 푸르름을 상징합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듣고 처음으로, ‘초록’이라는 단어가 계절을 넘어서 어떤 감정과 상태를 가리킬 수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렇게 떠오른 첫 번째 초록은, 지금 이 여름을 통과하고 있는 수험생 여러분의 모습이었습니다. 반복되는 하루, 애써 눌러둔 감정,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끝내 자리를 지키는 결심. 그 모든 순간은 짙어지는 나뭇잎처럼, 여러분 안에서 초록빛으로 자라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초록은, 그 시간을 언어로 증명해내는 기록 바로 생활기록부입니다. 사전적으로 ‘초록(抄錄)’은 하나의 서사에서 중요한 내용을 발췌해 적은 글, 또는 그 행위를 뜻합니다. 저는 생활기록부를, 인생이라는 더 긴 이야기 속에서 처음으로 내 이름을 담아 적어보는 ‘공식적인 초록’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은 그 초록 속에 숨어 있는 ‘이름 없는 나’를 꺼내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이야기, 말로 다 옮기진 못했지만 삶의 태도로 증명된 시간들. 본격적인 실전 전략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그 문장들 속에 어떤 ‘나’를 담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 이름 없는 문장 속에 숨어 있는 나

처음으로 생기부를 제대로 마주했던 순간,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막막함이었습니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떤 방향으로 작성해야 좋은 기록이 되는지에 대한 감도 없는 상태에서, 단 몇 줄의 제한된 문장으로 저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막연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과목별 세특의 경우, 한정된 글자 수 안에 한 학기 동안의 수업 참여를 모두 담아야 했기에, 그 문장들이 저의 진로와 학업 태도, 그리고 인간적인 면모까지 암시하게 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입학사정관은 수많은 생기부를 익명 속에서 마주할 텐데, 과연 이 짧은 문장들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전할 수 있을까—그 질문 앞에 서 있었던 저는, 생기부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이것으로 저를 설명해야 한다’는 공식적인 시작이라는 사실을 처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기부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같은 진로를 가진 학생은 분명 많을 것이고, 그중에는 전공 관련 활동을 저보다 훨씬 더 많이 수행한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로의 일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기부를 통해 어떤 사람이 그 길을 꿈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저 치과의사를 희망하는 한 명의 학생으로 남기보다는, 입학사정관에게 “이 학생이 치과의사가 된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기부를 단순히 전공 적합성으로만 채우기보다는, ‘저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진심으로 답하고자 했습니다. 치과의사가 되고 싶은 이유뿐 아니라, 제가 어떤 시선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태도로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문장 안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기부는 제가 누구인지 가장 먼저 증명해보는 언어의 시작이자, 입시라는 이름 아래 처음으로 저 자신을 말해보는 서사라고 느껴졌습니다.

# 기록이 드러내는 태도

좋은 생기부 문장이란 단순히 활동을 열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의 태도와 감정, 시선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수학 세특에 받았던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재능과 성실함을 겸비하였으며 수업 집중도가 매우 높은 학생으로 강의에 눈을 떼는 법이 없어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듦.” 이 문장은 수학이라는 과목 안에서의 성취를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가 어떤 태도로 학습에 임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인상을 남깁니다. 저는 이 문장을 통해 ‘수업을 듣는 방식’이라는 작은 장면 속에서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이 학생이 치과의사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단 한 번도 치과의사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 문장은 곧 저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 중 하나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문장은 담임 선생님께서 작성해주신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속에도 담겨 있었습니다. “교사로서 가르침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학생임.” 또는 “자신의 비전을 향해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학교 생활에 임하는 최고의 학생임.”이라는 문장은 제가 단순히 ‘성실한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그 성실함이 어떻게 교사에게 감정적으로 전달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생기부를 쓸 때마다 이처럼 물리적 길이는 짧지만, 그 안에 담긴 태도와 관계의 밀도가 느껴지는 문장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문장에 이름은 적히지 않았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은 “이건 이 학생만의 문장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기록. 저는 그런 문장 하나가 때로는 전공 관련 활동보다 더 강하게 나를 설명해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단어 너머의 나를 설계하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단 한 문장으로 ‘나’라는 사람의 모든 면을 드러내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좋은 태도나 시선을 가졌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문장으로 녹여낼지를 고민하지 않으면 결국 단순한 나열로 흐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기부의 구조를 하나의 이야기처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단편적인 활동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과 활동 사이의 맥락을 잇고, 감정과 태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일. 그 흐름 속에서 입학사정관이 ‘이 학생은 이런 시선과 태도로 고등학교 3년을 보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기록 전체의 온도를 맞춰나갔습니다. 생기부라는 제한된 형식 안에서도 진심은 드러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그 진심은 단어의 크기가 아니라, 단어를 대하는 저의 태도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생기부는 점점 ‘기록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표현을 고민하는 주체’로서의 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교사가 써주는 글이긴 하지만, 그 문장이 어떤 맥락 속에서 나왔는지를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제가 어떤 순간에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과정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평가를 위한 전략이 아니라, 고등학교 3년간의 성찰과 성장의 흔적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도 전공적합성만을 좇기보다, “이 생기부를 읽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라는 질문을 먼저 떠올려보셨으면 합니다. 기록은 곧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드러내는 문장 하나는, 때로는 진로 활동보다 더 또렷하게 입학사정관의 기억에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 탐구 주제는 수렴 되어야 한다

생활기록부는 단지 쌓이는 기록이 아니라, 설계되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탐구 활동은 그 이야기의 핵심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부터 모든 주제를 정해두고 계획적으로 탐구를 이어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초반까지는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두고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 다양함은 언젠가 수렴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진로와 관련한 탐구가 단지 “많이 했다”는 양적 나열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3학년이 되던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탐구 활동들을 돌아보며, 그 안에서 저만의 서사를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제가 궁금해했던 것들은 결국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를 질문했고, 그에 대한 답을 생기부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려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1학년 때 줄기세포와 치아 재생의학에 관심을 가졌고, 2학년 때는 면역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처음엔 이 두 관심사가 다소 분리되어 보일 수도 있었지만, 3학년으로 넘어가며 저는 그 둘을 연결하는 탐구의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면역항암제에 사용되는 면역 관문 억제제에 주목하면서, 관련 단백질의 활성 조절을 치아 재생 과정에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민했습니다. 특히 면역 거부 반응이라는 재생의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학년 때 공부했던 NK 세포와 MHC 분자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접근했고, 1학년 동아리 자율 탐구에서 접했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했습니다. 이렇게 과거의 탐구를 단절시키지 않고 연결하는 과정 속에서, 저는 생기부가 말하는 한 사람의 지적 여정과 진정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 끝에서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이 분야가 좋습니다”라는 문장이 아니라, “저는 이렇게 사유하고 탐구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물론 지금 제가 말씀드린 탐구 과정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고등학생이 이런 아이디어까지 생각해도 되나?’, ‘이건 너무 과학적으로 정교해야 하는 영역 아닌가?’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학적 정확성을 검증받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배움과 탐구를 바탕으로 얼마나 창의적으로 융합하고 연결하려 했는가입니다. 저는 논문을 쓰는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완성된 결과보다도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사유를 했는가, 무엇을 더 알고 싶어졌는가, 어떤 연결을 상상해보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생기부는 그런 ‘과정의 흔적’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낼 수 있는 기록입니다. 정답을 쓰는 글이 아니라, 진심을 설계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 활동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탐구 주제를 수렴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주제들을 교과·비교과·자율 활동 등 다양한 영역 속에서 서로 연결 지어 바라보는 시도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기부는 단지 활동을 모아놓은 기록이 아니라, 그 활동들 사이의 서사를 읽게 만드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양한 활동을 할 때마다, 이전의 탐구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지를 늘 고민했습니다. 예컨대 1학년 자율활동 시간에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하며 처음 접한 ‘사회역학’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독서활동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개념을 2학년 진로활동에서 진행했던 ‘화랑노벨’ 프로젝트로 이어가, 실제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사회역학적 관점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를 탐구했습니다. 책 속 지식을 현실로 옮기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저는 한 문장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독서 세특이 어떻게 실천적 탐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배웠습니다. 입학사정관이 이 기록을 읽을 때, 단절된 활동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읽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또한 생명과학 관련 활동에서는 더 밀도 높은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생명과학Ⅰ, 생명과학Ⅱ, 고급생명과학을 거쳐 각각의 교과 세특에서는 줄기세포와 유전자 발현 조절을 중심으로 한 치아 재생 연구를 점차 구체화했고, 그 탐구의 진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이 흐름은 동아리 활동과도 맞물렸습니다. 2학년 동아리에서 면역항암제의 개념을 익힌 후, 3학년에는 면역 관문 억제제 관련 분자와 재생의학 간의 융합 가능성을 탐색했습니다. 면역세포와 파골세포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분자를 바탕으로 골재생 가능성을 조사했고, 이를 다시 제가 꾸준히 탐구해왔던 치아 재생 분야와 연결 지어보았습니다. 생명과학 교과에서 익힌 생물학적 특성들을 적용하여, 면역 관문 억제제를 이용한 치아 재생 유도 가능성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전문적 논문을 작성한 것이 아니라, 학생 수준에서 가능한 선에서 창의적인 연결을 시도한 결과였습니다. 중요한 건 정답이나 완성도가 아니라, 기존에 배운 지식을 어떻게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가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나의 서사로 엮이는 생기부를 만드는 것이 제가 세운 전략이었습니다.

# 전공보다 먼저, 사람

전공 관련 활동이 분명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생기부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몇몇 활동 속에서 전공과는 직접적인 연결이 없음에도, ‘저는 어떤 사람입니다’라는 메시지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한 교과 세특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수업 전후로 단어를 정리하고 지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유력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임. 개인의 욕구와 사회적 규범의 충돌에서 나타나는 자아의 합리화 과정에 대한 지문과 자아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한 지문을 비교해 분석하며 폭넓은 지식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함. 분석 내용에 대해 교사와 질의응답하고 친구들과 공유하여 추후 학습을 하는 이상적인 배움의 자세를 보여줌.” 이 문장은 어떤 특정 전공을 향한 적합성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수업 내용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다른 사람들과 지적 호기심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제 태도를 정확히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처럼, 평가를 위한 공부가 아닌 진짜 배움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전공 이상으로 의미 있게 읽혔으면 했습니다.

음악 과목에서의 활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평소 관심을 두었던 ‘음악과 타 학문의 융합’에 대해 탐구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진행했는데, 이는 단순한 과제 수행을 넘어 저의 창의적 사고와 공동체적 태도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진동수에 따른 음색의 변화와 이를 음악 치유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주제로, 고주파수가 교감신경계를 자극해 우울 증상 완화에 기여한다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확장했고, 이 과정에서 학교 내 학습 공간의 정서적 안정과 학습 효율 향상을 위한 음악 노출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개인 결과물을 넘어 공동체의 공간 개선이라는 실천적 방향까지 연결해낸 이 활동은, 저의 지적 열정과 타인을 향한 시선, 문제 해결에 대한 태도를 함께 드러내는 기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장은 전공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그 사람의 깊이와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믿습니다.

# 의미를 남기는 정리법

이처럼 생기부를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하기 위해 저는 정리의 방식에도 나름의 전략을 세웠습니다. 생기부 내용이 어느 정도 기재된 이후에는, 모든 세특과 활동들을 하나의 문서 안에 정리해두었고, 그 안에서 각 문장을 분석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탐구 동기’, ‘탐구 내용’, ‘후속 활동’의 구조로 색을 달리해 표시했습니다. 그 작업을 통해 저는 각 활동이 어떤 계기에서 출발했으며, 이후에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 기록이 고립된 활동으로 남지 않도록, 이후 다른 교과 세특이나 자율활동에서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에 따라 생기부 속 여러 활동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해에는 그간의 활동들을 바탕으로 마인드맵을 제작해보았습니다. 주된 탐구 분야 두 가지를 중심에 두고, 그 주제들이 저의 관심사로서 어떤 방향성과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를 정리했습니다. 이후 각 활동이 해당 주제의 어느 지점과 연결되는지를 표시하면서, 교과 세특뿐만 아니라 자율활동, 독서, 진로활동의 기록들이 어떻게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해 가는지를 살펴봤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생기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짜임을 갖춰 만드는’ 작업으로 인식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어떤 기록도 의미 없이 지나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입학사정관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단지 “많이 했다”가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지를 이렇게 꿰어냈다”는 서사가 될 수 있도록, 저는 기록 너머의 연결을 끊임없이 설계하고자 했습니다.

조금은 긴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글이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생활기록부라는 고민 앞에서 마주 앉은 누군가와의 대화처럼 읽히기를 바랐습니다. 입시는 그 자체로 냉정하고 구조적인 제도이지만, 그 안을 살아가는 우리는 지극히 감정적인 존재들이니까요. 막막함과 부담감, 타인의 생기부를 보며 느끼는 조급함과 비교심, 그 모든 감정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잘 짜인 팁이나 모범 사례 하나보다, ‘나도 그랬다’고 고백하는 이 한 편의 글이 누군가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밝혀줄 수 있다면, 이 기록은 더없이 다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끝까지 버티고 있는 여러분의 시간에도, 진심 어린 응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글이 올라가는 시점은 수능을 99일 앞둔 날입니다. 누군가는 수시 지원서를 다듬으며 면접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정시를 목표로 매일 책상 앞에서 숫자와 씨름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칼럼에서는 수시 전형의 생기부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수능을 향해 묵묵히 걷고 있는 이들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있다고. 점수가 오르지 않을 때마다 무너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불안과 초조함을 품은 채 하루를 끝까지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저는 압니다. 그러니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아직, 결코 늦지 않았고, 여전히 한 걸음씩 앞으로 가고 있다고.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고 계절은 언젠가 바뀌겠지만, 이 여름을 통과해온 우리 안의 초록빛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자신을 믿으려 애썼던 마음, 무너지는 순간에도 끝내 자리를 지켰던 결심,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가도 다시 펜을 쥐었던 밤들. 그런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의 여러분을 만들었습니다. 초록은 단지 계절의 색이 아니라, 끝까지 나를 놓지 않은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 초록이 언젠가 기록 너머에서 누군가에게 닿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 자신에게 가장 깊이 각인되기를 바랍니다. 초록을 거머쥐었다는 건, 결국 이 여름을 스스로의 이름으로 살아냈다는 뜻이니까요.

이 계절을 건너는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리고 스스로의 마음속에 ‘초록을 거머쥔 모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더운 여름날 반복되는 수험생활이 때로는 의미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묵묵히 살아내는 여러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지나고 나서야 계절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시간도 훗날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 여름을 돌아볼 때, 그 시간 속에 용기 내어 걷던 여러분 자신의 발자국이 또렷이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이야기 한 편을 다정하게 꺼내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의 이 글이, 그 이야기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 잡는 문장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또 다른 REPLAY로, 또 한 번의 이야기를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오겠습니다.

한 줄의 문장이 되어,

이 계절을 건너는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머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