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제 마지막 방법론 시리즈인 <문제를 대하는 태도>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9월 모의평가까지 약 2주 정도 남은 기간 동안(벌써?) 끝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문대태’에서는 주로 어떠한 이야기를 다루게 되느냐,
‘선대태’, 즉 <선지를 대하는 태도>에서 다루지 못했던, 선지 말고도 윤리 과목 문항의 또 다른 요소들인 ‘발문’ 그리고 ‘제시문’에 대한 모든 것을 살펴보며,
더 나아가 윤리 과목 시험에 출제되는 문항 유형들을 유형별로 살펴보고,
벤다이어그램형, 삼단 논법형 등
마지막으로는 20개의 문항들로 이루어져 있는 시험지 한 회차를 전반적으로 운영하는 방법과 그 과정에서 고려할 만한 방법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소거법, 부화법 등
우선 우리가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먼저 하게 될 이야기는 제시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상 선지 다음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제시문’.
가장 먼저, 제시문의 사상/사상가를 찾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할 듯합니다!
‘뭐야.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제시문의 사상가 찾는 것이 뭐가 어렵다고.’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제시문의 출제 원리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을 해 볼 만한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1. 제시문 속 ‘키워드’의 역할
기본적으로 우리가 선대태에서 학습하기를, 선지의 O/X를 판단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배웠죠?
그 사상가가 명시적으로 한 주장이 아니더라도, 그 사상가의 입장에서 부정할 이유가 없으면 O로 처리해야 한다.
애초에 평가원은 절대로 그 사상가가 원전에서 직접 한 말만을 출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상가의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추론하여 판단할 수 있는 내용으로 평가원이 선지의 표현을 ‘직접 창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제시문의 사상/사상가를 찾으실 때는 이렇게 단순 O/X의 차원에서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즉, 비록 이 사상가가 직접 한 말은 아니더라도, 이 사상가의 입장에서 부정할 만한 이유가 없으면, 이 사상가도 해당 제시문의 사상가가 될 수 있지 않나?
이렇게 단순 O/X의 차원에서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무슨 뜻이냐?
애초에, 제시문의 사상가를 찾으실 때는,
“지금 이 제시문의 내용에 동의할 수 있는(부정하지 않는) 사상가들로는 누가 있을까?”
이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지금 이 제시문의 내용에 가장 잘 부합하는 / 가장 잘 어울리는 / 가장 잘 맞는 사상가는 누구일까?”
를 고민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다른 사상가를 데려와도 이 내용에 동의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 자체가 제시문의 사상/사상가를 찾으실 때는 별로 좋지 못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다른 사상가 역시 이 내용에 동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 사상가보다 이 사상가가 해당 제시문의 내용에 더 잘 부합하고 더 잘 어울리는 것이 맞다면,
그 사상가가 이 내용에 동의하든 말든 어쨌든 더 잘 어울리는 이 사상가가 해당 제시문의 사상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제시문의 사상/사상가를 찾으실 때는 ‘상대성’의 차원에서 접근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 내용에 동의할 수 있는 모든 사상가를 데려오시면 안 되고요.
이 내용을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예시 기출 문항을 하나 살펴봅시다.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문항입니다. 특히, 여러분이 보통 가장 어려워하시는 사회 계약론 문항.
여기에서 혹시 갑이 누구입니까?
그래도 이 정도의 난이도면 잘 찾으실 것 같기도 한데요,
갑은 로크입니다.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공동체를 결성하고 스스로 국가 상태로 들어간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일단 사회 계약론 사상가인데,
특히 자연 상태에서의 ‘공통된 법률’과 ‘공평무사한 재판관’의 부재를 강조하고 있으니까, 사회 계약론 사상가들 중에서도 로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홉스도 해당 제시문의 내용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요, 홉스라고 해서 자연 상태에서 공통된 법률이나 공평한 재판관이 있다고 보지는 않을 것 아니에요.
홉스에 따르면 자연 상태는 애초에 만인이 서로 전쟁하는 상태이니까.
그리고 홉스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공동체를 결성하는 것도 맞지 않아요?
물론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는 소유권(재산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재산을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 소유권(재산권)도 성립이 안 되는 것이고, 정부(절대 권력) 수립 이후에 비로소 소유권(재산권)도 성립하게 되니까,
결국에는 나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국가를 만든다고 말해도 안 될 것은 없지 않나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제시문의 사상가는 홉스가 아니라 로크가 되어야 맞죠.
아무리 어떻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 보았을 때, 홉스가 설령 해당 내용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해당 제시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상가는 로크입니다.
특히 로크의 입장에서는 자연 상태에서 공통된 법률과 공평무사한 재판관이 부재한다는 사실이 결국 사회 계약을 맺는 핵심적인 이유가 될 정도이니까요.
그래서 실제로 ‘공평무사한 재판관’ 같은 표현을 로크의 키워드로 기억하시고 계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에요. 외에 ‘재산 보호’ 같은 것도요. 실제로 홉스, 로크, 루소 중에서 개인의 재산권(소유권) 보장을 가장 강조하는 것도 로크이니까요.
로크는 유일하게 재산권(소유권)을 인간의 자연권으로 보는 사상가이기도 하죠.
2022학년도 9월 모의평가 문항입니다.
해당 제시문의 사상가도 로크였습니다.
네, 로크의 제시문입니다.
물론 해당 문항 자체는 로크라는 사실을 몰라도 사회 계약론 사상가라는 것만 알았으면 풀리는 문항이었지만,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고’라는 부분을 통해, 아, 재산 보호를 가장 강조하는 것은 로크이니까.
이렇게.
지금 로크라고 생각하지 못할 이유, 즉 로크의 사상과 충돌한다고 할 만한 내용이 제시문의 내용 중에 하나도 없죠?
그리고 로크 말고 다른 사상가들이 강조하는 내용이 지금 제시문에 따로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로크가 되어야 맞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선 우리가 제시문에 대해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상가가 어떤 제시문의 내용에 ‘동의’할 수 있다고 해서 바로 그 사상가가 해당 제시문의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 제시문에 어쩌면 여러 사상가가 해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평가원 & 교육청이라면 대체로는 애초에 다른 사상가들은 될 수가 없도록, 즉 다른 사상가들은 동의할 수 없도록 상당히 명확하게 제시문을 써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선지로도 충분히 변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제시문을 애매하게 써서 논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잖아요?
사설은 뭐, 워낙 출제자 마음대로 내니까 사설은 예외입니다... 평가원 & 교육청 기준이에요.
그러나 설령 다른 사상가들이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더라도 그 내용에 가장 잘 부합하는 사상가가 따로 있다면 그 사상가로 생각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컨대,
신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는데, 아퀴나스도 엄연히 간접적 의무를 주장하잖아요! 하면서 동물 학대 금지의 간접적 의무에 대해 말하는 제시문을 두고 왜 칸트가 아닌 아퀴나스는 될 수 없는지 따진다거나,
솔직히 아퀴나스의 입장에 더 잘 어울리려면 단순히 간접적 의무에 대한 내용에서 더 나아가, 제시문에 신 혹은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겠죠? 아퀴나스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사상가이니까.
아니면 최소한 칸트일 수는 없는 어떤 내용이 제시문에 같이 등장하든가요.
국가 간 세력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겐소의 제시문에서, 집단 간 힘의 균형은 니부어도 강조하니까, 막말로 니부어도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고민하실 필요는 없다는 뜻이죠.
당연히 니부어도 집단 간 힘의 균형을 이야기하고, 국가도 집단이니까 국가 간 세력 균형 이러면 니부어도 부정할 이유는 없죠. 그런데 그래도 ‘국제 사회’, ‘국가 간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하는 것은 모겐소이니까요, ‘국가’ 간 세력 균형, 국제 사회, 이러한 내용이 등장하면 모겐소의 입장에 더욱 부합하게 되죠.
막말로 국제 사회에 대한 관점이 나왔는데 오히려 모겐소가 아니라 니부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어색하죠? 굳이 그렇게 볼 만한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차마 모겐소라고 볼 수 없는 어떤 내용이 제시문에 따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 이상.
2. 제시문 속 ‘키워드’의 위험성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래의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요.
“아, 뭐야. 그러면 각 사상가들별로 키워드가 되어 주는 단어 / 문장만 제대로 암기한 다음에, 제시문에서 그 키워드 보고 찾으면 되는 일 아님?”
즉, 어떻게 보면 제시문의 사상/사상가를 찾는 방식 중에 가장 대중적인(?) 방식인,
‘눈에 띄는 키워드 단어 혹은 문장을 보고, 제시문의 사상/사상가를 찾기’.
그런데 그러면 이제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요.
어떤 문제일까요?
평가원이 바보는 아니어서요,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쉽게 어떤 루트를 타려고 하면 바로 알아채고 어떻게든 꼼수를 부리는 친구들은 다 낚으려고 합니다.
실제로 잘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제시문이든 선지이든 사실 정석적으로 독해해서 의미를 파악하고, 또 내가 알고 있는 개념을 응용하고 판단해서 풀면 그만이죠?
그런데 선지도 그렇고 제시문도 그렇고, 우리는 늘 쉬운 길로 가고 싶죠. 정석적인 독해를 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지고 갑자기 무서워지니까.
그래서 요즘 평가원이 안 그래도 선지에서 키워드를 이용한 낚시를 많이 하잖아요. 그렇게 정석적으로 독해하지 않고 키워드 위주로 쉽고 편하게 풀려고 하는 친구들을 낚기 위해.
왜, 2년 전 수능에서는 <시민 불복종> 문항에서 ‘차등의 원칙’이라는 키워드를 이용한 거대한 낚시를 했고,
차등의 원칙을 위반하는 법은 시민 불복종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기본 개념을 이용하여, ‘차등의 원칙에 근거한 법은 시민 불복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라는 내용의 선지를 적절한 선지로 출제하였죠.
작년 수능에서는 또 <시민 불복종> 문항에서 ‘무질서의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이용한 거대한 낚시를 한 번 더 했죠.
시민 불복종 여부를 결정할 때 해당 불복종 행위가 초래할 수 있는 무질서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심화 개념을 이용하여, ‘시민 불복종의 대상을 결정할 때 무질서의 가능성에 근거해서 정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선지를 적절하지 않은 선지로 출제하였죠.
그런데 선지가 아닌 제시문에서도 이 키워드를 이용한 낚시를 하는 경우가 있답니다.
특히, 비교적 최근 들어 키워드를 이용한 낚시가 다소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선지와 달리,
제시문의 경우 아주 먼 옛날부터 평가원이 부단히 키워드를 이용한 낚시를 해 왔습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2023학년도 수능 문항입니다.
갑 제시문을 보시죠.
성인(聖人)의 은혜가 만세에 베풀어져도 사람에게 특별히 치우치지 않는다. 친함이 있으면 어진 자가 아니며, 명성을 추구하여 참된 자기를 잃으면 선비가 아니다.
우리가 교육과정상 일단 학습하기로, ‘성인’이라는 말 자체는 유교와 도가 둘 다 쓸 수 있다. 오케이.
그렇다면 마저 읽어 보았을 때...
어! ‘어진 자’. 그리고 ‘선비’?
이거 완전히 유교의 키워드들이잖아.
오케이. 유교로 놓고 간다!!!
이러면 이제 틀리는 것이죠.
정확하게는 해당 문항의 오답률이 약 80%였는데, 그 80%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지금 잘 보시면, “친함이 있으면 어진 자가 아니며”라고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그래요. 어질다, 라는 말 자체가 어질 인(仁) 자를 쓰고, 이 인이라는 덕목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히 유교죠.
그리고 어진 자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도 유교가 맞는데...
어!
그런데 유교에서 친함이 있으면 안 된다고 보나요?
오히려 유교에서 추구하는 인은 사랑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차별적 사랑[별애(別愛)]이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존비친소’에 기반한 차별적 사랑이 아닌가요?
존비(귀천)와 친소(친함과 친하지 않음)를 가려서 나와 가장 가깝고 친한 사람, 즉 나의 부모와 형제자매부터 시작해서 점차 친하지 않은 사람으로까지 사랑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유교의 차별적 사랑의 정신이잖아요.
그러면 유교의 입장에서 어진 자는 오히려 친함이 있는 자, 친함을 가리는 자 아닌가요???
그러고 나니까 또 이상한 부분이 보입니다.
“성인(聖人)의 은혜가 만세에 베풀어져도 사람에게 특별히 치우치지 않는다.”
이상하네요. 유교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말하면서도, 인간만이 천명(天命), 즉 하늘의 명령인 ‘도덕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인간을 귀하게 여기거든요.
그런데 성인의 은혜가 온 세상에 베풀어지는데, 사람에게 특별히 치우치지 않는다?
키워드만 보고는 분명히 유교인 줄 알았는데, 전체 맥락을 살펴보면 도저히 유교일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갑은 유교 사상가가 아니라, 도가 사상가입니다.
정확하게는 도가 사상가 장자예요.
도가에서 지금 유교를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네가 말하는 어진 사람? 사람들을 친한 사람과 친하지 않은 사람으로 차별하는데 그게 어떻게 어진 사람임?
그리고 명성 같은 인위적인 것을 추구하다가 참된 자신의 모습을 잃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선비임?”
이러한 맥락의 제시문입니다.
아니.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아냐고요?
현장에서 어떻게 맞히냐고요?
물론 평가원은 사전에 힌트를 주기는 주었습니다. 23 수능 바로 이전 평가원 시험, 즉 23 9월 모의평가에서 사실상 힌트를 전부 다 주었었어요.
갑 제시문을 보십시오.
참된 사람[眞人]은 모자란다고 억지 부리지 않고, 성공을 뽐내지 않으며, 일을 도모하지도 않는다. … (중략) … 이로움[利]과 해로움[害]을 구별하는 자는 군자(君子)가 아니다. 명예를 위해 참된 자기를 잃어버리는 자는 선비[士]가 아니다.
여기에도 ‘군자’, ‘선비’ 같은 유교의 키워드들이 등장하는데, 우리가 방금 살펴본 내용과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유교의 입장을 비판하는 도가 사상가 장자의 제시문일 따름이었습니다.
“이로움과 해로움을 분별하고 차별하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군자냐? 명예를 좇다가 참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선비냐?”
이러한 맥락인 것이죠.
이 9월 모의평가 이후의 시험, 즉 당해연도 수능에서 평가원은 완전히 똑같은 트릭을 이용해서 오답을 유도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수험생들이 그대로 넘어가 버렸죠.
지금 우리는 제시문에 대해 살펴보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당해연도 평가원 모의고사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별것 아닌 것 같잖아요? 도대체 다들 왜 저런 것에 걸려 넘어갔을까 싶잖아요?
내가 현장에 가서는 안 그럴 수 있을 것 같잖아요?
우선,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23 수능 문항은 당시 수능에서 오답률 1위를 기록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저 갑 제시문 때문이겠죠.
선지들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갑을 유교 사상가로 잘못 놓고 푸는 순간, 답은 완벽하게 2번이 나옵니다.
그런데 2번 선지 선택율이 전체 100% 중에서 무려 50%였으니까요.
전체 수험생 중 약 2명 중 1명은 키워드만 놓고 제시문을 읽다가, 이 문제를 틀렸다는 뜻이죠.
여러분보다 수능을 앞서 보았던 당시의 선배들이 바보 멍청이들이어서가 아니죠. 대상만 제시문에서 선지로 바뀌었을 뿐, 이 키워드를 이용한 낚시의 경향성은 불과 작년 수능까지도 (이제는 주로 제시문보다는 선지에서)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제시문이든 선지든 결국 의미를 제대로 독해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쉽게, 편하게, 덜 생각하고 키워드 위주로 접근하려고 하면, 결국 어디에선가 사단이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평가원이 바로 여러분이 그러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까요!
요즘은 제시문보다는 선지에서 낚시를 훨씬 많이 거는 추세이지만, 언제 또 어디에서 어떻게 키워드를 이용해서 제시문에서 낚시를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음 예시도 살펴봅시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옛날로 가 봅시다.
무려 제가 현역이던 시절 ㅜㅜ
2019학년도 9월 모의평가 문항입니다.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의하면 질서 정연한 사회란 그 구성원들의 선을 증진하고 공적 정의관에 의해 효과적으로 규제되는 사회이다. 그런데 정의의 원칙을 자기 사회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하고 세계를 지금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가 질서 정연한 사회가 되기 전에 빈곤으로 인해 죽어갈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의 이익을 평등하게 고려해야 하므로 빈곤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야만 한다.
‘공정으로서의 정의’, ‘질서 정연한 사회’
앗! 롤스구만.
...아시겠죠? 이제는?
해당 제시문의 사상가는 롤스가 아니라 롤스의 사상을 비판하는 싱어입니다. 그 과정에서 싱어가 롤스의 키워드들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요.
해당 제시문의 경우 조금만 꼼꼼하게 읽어 보시면 “아. 낚시구나!” 하실 만한 문항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방금 위에서 살펴본 23 수능 제시문보다는 쉬운 경우네요.
그러나 어쨌든, 이러나저러나,
평가원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제시문에서 키워드를 이용한 낚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시문의 전체 맥락을 검토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제시문의 전체 맥락을 살피지 않고 늘 눈에 띄는 키워드로만 사상/사상가를 찾으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그 습관을 고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뭐 어떻게 할까요,
지금부터 키워드들은 아예 그냥 다 버려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시문 속 키워드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한 모든 이야기는, ‘키워드’의 중요성을 부정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직 ‘키워드’ 하나만 보고 제시문에 접근할 때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기 위한 이야기였습니다.
제시문 속 키워드는 우리가 제시문의 전체 맥락을 읽어 나가는 길잡이, 일종의 ‘방향성’이 되어 줍니다.
실제로 제시문을 읽으실 때, 눈에 띄는 키워드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것들은 그냥 본능적으로 눈에 먼저 띄는 것들이에요. 굳이 내가 키워드를 찾아야지! 하지 않더라도, 원래 처음 글을 읽을 때는 그것이 아무리 짧은 글이라고 하더라도 유독 눈에 띄지 않는 단어들, 개념들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특히 내가 배경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글을 읽는다면요.
윤리 과목 제시문에서는 그것들이 어떤 사상가가 주로 사용한다고 우리가 학습하였던, 바로 특정 ‘키워드’들일 것이고요.
그래서 저 역시 제시문을 처음 볼 때는 키워드들이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 키워드들 하면 바로 연관되는 사상가로 방향성을 딱 잡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제시문의 전체 내용을 슥 읽어 보죠.
어차피 독해형 문항이 아니고서야 제시문이 그렇게 길지는 않잖아요? 보통 두세 문장, 그리고 강연자형 문항처럼 많이 길어 보았자 보통 다섯 문장 내외입니다.
이 정도는 다 읽으실 수 있죠?
네, 다 읽으세요.
그리고 내가 처음에 키워드를 보고 생각했던 그 사상가가 과연 맞는지 검토해 보십시오.
안 될 이유가 없겠다.
내가 처음에 키워드를 보았을 때 그 사상가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상가의 입장과 해당 제시문의 내용 간에 충돌하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고, 오히려 아주 매끄럽게 연결된다.
그러면 실제로 그 사상가가 맞는 것이죠.
그런데 제가 방금 위에서 들어 드린 예시들처럼, 분명히 키워드로 방향성을 잡고 나아갔는데,
어! 군자, 선비, 하길래 분명히 유교인 줄 알았는데, 지금 친함이 있으면 어진 자가 아니라고? 말이 되나? 유교에서는 친소에 기반한 차별적 사랑을 주장하는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어! 공정으로서의 정의, 질서 정연한 사회 나와서 당연히 롤스인 줄 알았는데, 지금 내용을 잘 읽어 보니까 롤스가 절대로 될 수가 없네.
오히려 롤스의 사상을 비판하고 있잖아?
이렇게 충돌하는 지점을 발견하시면 그때 방향성을 수정하시면 되고,
일단은 키워드 중심으로 찾으시되,
다만 키워드를 절대 맹신하지는 마시라. (낚시일 수도 있으므로.)
언제나 결국 제시문의 전체 맥락에 대한 검토는 필수다!!!
제시문의 전체 문장을 다 읽지도 않고 평가원의 낚시에 낚이지 않을 그런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도 마십시오.
뭐, 이것은 선지도 마찬가지이지만요.
오늘 칼럼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시문의 사상/사상가를 찾을 때는, 단순히 그 제시문의 내용에 누가 동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 제시문에 가장 잘 맞고 / 가장 잘 어울리고 / 가장 잘 부합하는지를 생각하자.
즉 선지와 달리 제시문은 ‘상대성’의 차원에서 접근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평가원이 제시문에서 어떤 사상가의 대표적인 키워드 단어/문장을 이용해서 낚시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키워드만 보고 제시문의 사상/사상가를 확정 짓는 것은 금물.
키워드로 우선 방향성을 잡은 다음에, 제시문의 전체 맥락을 검토해서 혹여나 그 사상가가 결코 될 수 없는 어떤 내용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바로 다음 칼럼에서도 마저 이어서 제시문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것인데요,
특히 생윤과 관련하여서는 ‘키워드가 없는 사상가’의 경우에 대해, 그리고 윤사와 관련하여서는 ‘유독 어렵고 헷갈리는 제시문들’의 경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다음 칼럼으로 찾아와 볼게요,
모두 오늘 남은 하루도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